不平則鳴

초록 동화

*garden 2015. 5. 15. 12:51




전동차 안이 별안간 소란스럽다. 생각에 잠겨 있던 사람, 스마트폰에 눈을 박고 있던 사람, 작은 소리로 통화중이던 사람, 졸고 있던 사람 들이 너도나도 일어섰다. 타는 이와 내리는 이가 엇갈린다. 빈자리를 보고 다들 분주히 쫓아다녔다. 이곳 왕십리에서 정장 차림이던 출근족 대신 산에 가는 등산객들로 물갈이되었다. 옷차림도 덩달아 요란하다. 내 옆에서 내내 화장하던 여자아이가 일어서자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용케 쫓아온 아주머니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식으로 내쪽을 노려보는 우락부락한 아저씨 시선이 부담스럽다. 아마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게 마음 상한 듯하다. 괜히 사나운 시선으로 이곳저곳을 훑고서는 맞은편 아주머니에게 가 멈췄다. 복잡한 차내도 아랑곳없이 신발일랑 벗어서 뻗은 발로 깔고 있다. 사내가 이죽거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 아주머니가 눈을 떴다.
"신발 좀 똑바로 신으시오."
게슴츠레한 눈이 귀찮다는 듯 감겼다. '앗차' 싶었겠지. 이번에는 약간 질린 듯한 목소리로 사정하듯 변명한다.
"사람도 많은데 냄새가 나잖아요."
헌데 상대를 잘못 골랐다. 부썩부썩한 머리에 선글라스를 얹고 잠을 청하던 이 아주머니야말로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거므튀튀한 표정을 일그러뜨리다가는 뉘집 개가 짖느냐는 듯 눈을 감았다. 그 옆 사내가 눈치 없이 스마트폰 볼륨을 높여 난데없는 소음이 와글거린다. 무슨 일이라도 날까 하여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갔다. 객쩍은 소리들로 차내가 시끄러웠다.
여기는 꽃이 피었다가 진다. 저기는 이제서야 새싹이 파릇하다. 산 아래는 신록이 우거지는데 산 위는 여태 맹랑하다. 이른 아침 전철역으로 쫓아갈 때는 소소리바람 부는 봄이었는데, 두어 시간 전동차로 도심을 지나 내린 곳은 사방이 열린 여름이다. 햇볕이 제법 이글거렸다. 오늘은 계곡 물길을 따라 올라가 꽃을 찾아볼 참이다. 도심역에서 한참을 걸어가 한갓진 세정사 옆 숲쪽으로 숨어드는 길이 있다. 언뜻언뜻 보이는 사람들이 나보다 앞서가려는 듯 걸음을 재촉하여 앞질러 갔다. 사진을 찍든 등산을 하든 지기 싫은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느릿느릿 걸음을 뗐다. 깊은숨을 쉬었다. 서서히 숲 향기가 들이찬다. 으름덩굴이 뭉쳐 있는 곳에 으름꽃이 핀 것을 보았다. 드문드문 보이던 피나물이 어느 기슭에서는 군락으로 모여있다. 큰꽃으아리가 활짝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예전 밭에 다녀오던 이모 바구니 안에 들어있던 꽃이다. 숲을 오르내리며 맴돌고 뒤지는 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물소리가 들리는 듯 마는 듯했다. 한나절 내내 홀로 맴돌았다. 인적 끊긴 자리에서 적요를 즐기는 것도 좋다. 이제 꽃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고개를 들자 어지럽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풀은 치솟고 나뭇가지나 덩굴이 감겨 실타래처럼 엉켜있다. 길이 사라져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보라색 꽃을 떨어뜨리는 큰키 오동나무 아래 자리를 펴고 앉았다. 사람 사는 세상이 아득하다. 붉으락푸르락하던 아우성이나 드잡이질이 여기는 없다. 샛노랑색으로 눈부시던 우리 꼬마 웃음도 떠올렸다. 시간이 딱 멈춰 버린 것처럼 여겨졌다. 초록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나도 초록으로 물들어 더 이상 꼼짝하기 싫다.














Paul Mauriat Orchestra, 빗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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