發憤抒情

길찾기

*garden 2015. 8. 13. 07:51




방과 후에 정구를 따라간다. 지지리 못사는 동네여서 언덕받이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그래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정구네 집은 제법 선선한 바람도 든다. 눈을 씻고 찾아도 낮엔 어른을 볼 수 없다. 더러 거친 행세를 하는 형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툭툭' 치고 간다. 괜히 마음 졸이는 나와 달리 정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일어서면 어른 키가 천장에 닿을 만한 함석집에 아이들이 와글거린다. 그중 정구 동생이 아는 체한다. 정반이라든지 정식이라 했는데, 누가 누구인지 쉽사리 구분할 수 없다.
한나절 놀다가 집에 오려면 반대편 내리막 꼬불꼬불한 골목을 거쳐야 한다. 허드렛물도 바깥에 놓인, 비탈 가지를 따라가던 길은 어느 집 담장 위 늘어진 줄장미처럼 구부러지고 샛길로 갈라지기도 했는데, 자칫 잘 못들면 막다른 골목에 닿는다. 되돌아 나오며 기억해 두려는데 가끔 그게 헛갈린다. 어젯밤도 그렇다.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익숙한 이와 기억 속에만 있는 그 골목길을 밤새 내달리며 쏘다녔는데, 한편으로 '이쪽으로 가면 안되지' 하면서도 쫓아 들어가서는 결국 막다른 대문 앞에서 당황하곤 했다.












Billy Vaughn, Silver threads among the g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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