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또 한 계절

*garden 2015. 9. 18. 22:41




한기에 잠을 깼다. 무의식중에 이불깃을 잡아끌었다. 엊저녁 운동을 마치고 나올 때만 해도 후덥지근해 땀을 꽤 흘렸는데, 계절을 구분하는 금이 있어 문득 그걸 넘었는지. 불과 너댓 시간 만에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와 목덜미까지 이불을 덮어 쓰고서야 잠을 이룰 수 있었다.
날이 밝자 안개가 자욱하다. 건너편 아파트 허리가 잠겨 신기루처럼 솟아 있다. 명절 코앞이어서인가. 유난히 차가 붐볐다. 채 시계가 확보되지 않는 길에서 줄곧 차들에 떠밀려왔다. 어느 곳에서는 안개가 성글어져 괜찮다가도 길 모퉁이를 돌면 뭉쳐 있는 통에 아연실색했다. 그럭저럭 달려왔는데 성산대교를 넘기 전에 꽉 막혀 아예 삼십분도 넘게 꼬물거린다. 이제 신호를 대여섯 개 거치고 병목인 곳을 지나 서부간선도로를 타야 하는데 어떡하나. 달려가야 할 곳은 까마득하고 바람과 달리 쏜살처럼 지나는 아침 시간을 보자 한숨이 절로 난다. 차창을 내리다가 선득한 기운에 놀라 자라목을 만들었다. 옆 차선 나란한 차 운전자가 눈길이 마주치자 겸연쩍은지 고개를 돌린다. 쓸데없이 어깻짓도 하고 스마트폰을 치켜들어 액정을 쓰다듬는, 당황한 그 모습이 우습다. 앞차 운전자는 차창 밖으로 담배 연기를 한아름씩 내뿜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쫓아왔는데 이미 서너 대는 피웠을 게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진 날씨에 옷을 껴입고 나섰다가도 한낮에는 당황스러웠다. 햇볕이 의외로 따갑다. 어제는 차가 밀리는 바람에 잠시 서있었더니 철없는 잠자리가 차창 유리 바깥에서 입맞춤을 거듭했다. 약속장소에 서둘러 달려가는 길에 가로수에서 여린 매미소리를 들었다. 윤기를 잃은 여름꽃과 아직 제대로이지 못한 가을꽃을 유심히 보았다. 채 물러나지 못한 여름과 선뜻 다가들지 못하는 가을로 혼재된 시간, 문득 너를 떠올렸다. 거긴 겨울이 아직 사납게 활개치는 봄의 문턱이겠구나.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성격 탓에 까칠한 네 입술과 거칠어진 손등을 떠올렸다. 조만간 다니러 가겠다는 약속만 무성했다만 어찌하지 못하는 내가 때로는 안타깝다. 홀가분해졌다지만 알게 모르게 비롯되어 이어진 끈이 한두 개여야지. 쫓아나갈 참이면 어느 한쪽이 팽팽해져 기우뚱한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를 절감한다. 정신 없이 쫓아다니면서 때로 손발이 각각인 것을 느낄 때면 진작의 나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아찔하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살지 않았겠느냐. 위안하며 정신이라도 온전하게끔 노력할 일이다. 모쪼록 건강해라. 네 앞가림이 우선이니, 여기 걱정은 마라. 아무렇지 않게 손 내밀어 받혀주지 못하는 처지가 서글프다만, 우리가 형체를 갖기 이전부터 이어져 지금의 너와 내가 한몸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외로워하지 마라. 웃는 모습으로 불현듯 만날 수 있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어찌하겠느냐. 지난 밤 거기 날씨를 떠올리며 꿈을 꾸었듯이 쫓아갈 날을 기다린다. 늘 건강해라. 사랑한다. 너를 그리며 환하게 웃는 내가 보이지?














Pierre Porte, Soleil Bl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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