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실적이 있어야 산다

*garden 2015. 11. 8. 16:30




줄선 화물트럭과 내달리는 질주족들 사이에서 서커스를 하듯 가속페달을 밟았다. 때로는 커브길에서 몸이 쏠리기도 하고, 드리프팅을 하듯 차체가 밀릴 정도로 달렸다. 비로소 코를 '킁킁'거렸다. 공기도 익숙하다. 거의 다 와서야 드문드문하던 차가 잔뜩 몰려있는 곳을 만났다. 사냥감을 찾은 늑대처럼 쫓아가다가 제동을 걸려니 거부하듯 차가 쿨럭댄다. 늘상 이용하던 시내 관통길로 들어설 걸. 조금이라도 빨리 가겠다고 그냥 고속도로에 이어서 온 게 잘못이다. 민자고속도로에 들어서야 하는데 그 전부터 차가 밀려서는 꼼짝하지 않는다. 팔을 목 뒤로 둘러서는 깍지끼고 기지개를 했다. 밤길이어서인가. 제법 피곤하다. 신경을 곤두세워 쫓아온 탓이다. 휴일이어도 짜인 일정이 있으니 양보하거나 어물거릴 수 없다. 주머니에 넣어 둔 손전화기 진동음에 움찔했다.
"제수씨, 여기 차가 많이 밀리네요."
"어머, 이 시간이면 거기가 늘 그 모양이라예. 밥 차려놓고 있을 테니 천천히 오이소."
앞서 조카 전화를 받았다. 동생도 조심스레 전화를 했다. 저녁모임이 있어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고 양해를 구한다. 애엄마가 기다리니 바로 들어가라고 친절히 안내한다.
"그러지말고 제수씨 혼자 드세요."
톤을 높이며 말을 끊는다. 허나 막무가내이다. 헌신적이지만 고집 센 기질이 그대로 묻어난다.

늦은 저녁 식탁에서 이 반찬 저 반찬을 내앞으로 들이민다. 이건 어디서 구한 재료이고, 저건 어느 때 누구한테서 배운 대로 만든 것이고 등을 소상히 잇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부지런히 젓가락을 갖다댔다. 일부러 소리나게 음식을 씹었다. 남 보기에는 아무 음식이나 거리낌없이 먹는 듯할 게다. 허나 미각이 발달한 내게 썩 달라붙는 맛은 아니다. 그걸 동생댁도 안다.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을 뿐이다.
식사를 마치고는 거실에 와 앉기도 전에 납짝 뒤따라온다. 어느새 과일접시까지 챙겨들고는.
"애아빠가 오기 전에 저한테 설명해도 돼예. 결정은 제가 할 거니까요."
"어, 그럴까요? 그럼, 여기 앉으세요."
갑자기 어색하다. 허둥지둥하면 안돼지. 숨을 가다듬었다. 가방을 끌어 연다. 조심스레 서류들을 꺼냈다.

보험회사로 출근하게 되었다. 쉬고 있으려니, 불러내는 출판사가 있어서 몇 군데 쫓아갔다가는 포기했다. 한창때인 사람들과 고만고만하게, 글줄에 파묻혀 있다가 때가 되면 일어서 나가 식사를 하고, 또 출퇴근을 해 여느때와 다름없이 일과에 파묻혀 있어야 한다는 게 이제 마뜩찮다. 어느덧 쉴만큼 쉬어, 이대로라면 그냥 폐인으로 주저앉을 것 같기도 하다. 마침 권하는 이가 있어 소일거리이듯 쫓아갔다가 교육도 받으면서, 어느덧 '보험이란 게 내가 선입견으로 대한 것이나 아닌가' 하는 자괴감을 가질 정도가 되었다. 교육을 받으면서도 쉬엄쉬엄 할 정도였는데 점점 몰두하게 되었다. 닥친 그 다음이 막막하다. 옆사람들은 잘도 실적을 올린다. 회사에선 당근을 놓고 부추기기도 한다. 마음과 달리 내키지 않을 때도 있다. 구체적인 방법도 서툴 뿐더러 아직 습성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버틸 수도 없는 일. 시작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사명감을 갖고 금융전반에 걸친 지식을 읊조리며 보험 판매를 해야만 한다. 밤잠을 자다가도 깨선 한동안 서성이게 되었다. 압박도 연일 가해진다. 그 만한 일이야 쉽지 않을라구요. 오늘은 이런저런 과제도 해야 합니다 등등. 시험 삼아 예전 아는 동료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것으로 끝이다. 두 번 만나서 말 꺼내기가 어렵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참담한 결과를 어떻게 읊조려야 하나. 마치 내 인간관계가 시험대에 오른 듯 여겨지기도 한다. 가급적이면 가까운 사람은 건들지 말아야지 했던 결심을 접고, 밤길을 달려오게 된 계기이다.
제수씨, 시중금리가 이렇게 변합니다. 이제 저축이나 적금만으로 미래를 꿈꿀 수도 없구요. 앞으로 애들도 점점 힘들어질 겁니다. 이에 따른 보장 정도는 우리가 해줘야 되지 않을까요. 또한, 이런저런 좋은 점도 있습니다만.....
근 세 시간을 떠들었더니 입안이 텁텁하다. 밤이 이슥했다. 열두시가 가까워서야 돌아온 동생은 옷을 벗지도 않고 앉아서는 고개만 끄덕였다. 나도 말을 끊었다. 동생이 옆에서 손을 내밀더니 내 손을 꼭 잡는다.
"형님,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옵시다."
"이 시간에 무슨?"
"에이, 안되면 노래방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오지요."
"너도 취했잖아, 그럼!"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가을이 깊다. 가로등 아래 우뚝한 플라타너스 단풍길을 돌아 둘이 아파트 단지를 몇 바퀴나 돌았다.












Cynthia Jordan, Rainmelody Waltz






'不平則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다는 게  (0) 2015.11.16
가을 수산리  (0) 2015.11.11
십일월 그것  (0) 2015.11.07
꼬리뼈에 대한 기억  (0) 2015.11.01
이제 괜찮아야지  (0) 2015.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