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잘했으면 좋겠다. 중국 전국시대 합종과 연횡책으로 제후들을 설득했던 소진이나 장의 만큼은 아니라도, 제대로인 생각을 제때 차분하게 나타낼 수 있었으면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말하다 보면 도취되어 어조가 높아지거나 빨라지기도 하고, 경청하는 이를 보며 분위기를 타는 순간 강박관념이 심해져 했던 말을 되풀이하거나 뒷말을 잇지 못해 당황할 때도 있으며, 말꼬리를 자르지 못해 장황해지면서 미처 다른 낱말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기 전에 입 안에 되뇌이던 낱말이 씹혀서는 맥락이 꼬이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하려는 말을 매조져야 하는데 그게 요연하지 못해 더듬거리는 내가 때로는 당황스럽다. 정작으로 많은 청중은 집중하지 않아 실은 내 말의 십중팔구도 듣지 못한다.
말하기를 즐기지 않을 따름이지 서툴다고 여긴 적이 없는데 버벅대는 게 우습기도 하다. 공자가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나이 이순(耳順)이라면 귀가 열려 더 이상 안달할 일도 발버둥칠 일도 없지만 그게 그런가.
아침 햇빛이 비스듬한 공원길. 나뭇가지에 가지런한 참새들이 저희 세상인듯 '짹짹'거린다. 그러다가 낯선 발자국 소리에 재재거림을 멈추고 일시에 날아올랐다. 나 때문에 많은 참새가 수다를 멈추는 게 객적다. 헌데 열시간 내내 혼자 떠드는 사람도 보았다. 침을 튀기는 건 예사이고, 무대가 좁다고 휘저으며 목으로 피를 토할 정도의 열변을 뿜는데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정장 차림이던 게 어느덧 윗도리도 연단에 벗어 두고, 물잔을 몇 번이나 들고 놓던 팔 와이셔츠 소매는 걷어붙여져 있다. 무엇이 저이가 저렇듯 사람들 앞에서 무아지경으로 소리치게 만드는 걸까. 헌데 지나고서는 그 유창한 언변이 공허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사명감으로 지키고 있던 자리에서 내가 정신줄이나 놓고 있었던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쉴새없이 내뱉는 장황한 말의 물결에서 끊임없이 진위를 파악하고 대조하며 생각을 잘라 앞뒤를 맞춰보지 않았던가.
그 사람의 독특한 어투와 우스운 얘기 중에도 절대 웃지 않던 표정을 떠올렸다. 혹시 나는 말을 앞세우는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가급적 묵묵히 지내기로 작정하다가 어느 때 휘둘려서는 어쩔 수 없이 쫓아나오지나 않았을까. 말로 자기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부덕하다. 때가 지나면 다 통한다고 믿어도 그러하기는커녕 소외되어 저희들끼리 낄낄거리는 것을 보며 화내는 것도 내 잘못이다.
말은 정도를 가고 있는 걸까. 말은 사람들을 일깨우고 모아 하나로 세우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양념처럼 뿌려져 사는 맛을 느끼게도 한다. 더러 말은 소통하기보다 사람 사이를 막거나 끊기도 한다. 닫히고 떨어진 세상이 속시원하다면 돌아갈 일도 없겠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누구나 무인도에서 혼자 생활한 로빈슨 크루소를 꿈꾸기도 하지 않는가. 헌데 로빈슨 크루소가 다시 돌아왔으니 얘깃거리가 되지, 동굴 속에서 백골로 발견된 선원처럼 죽어 버린다면 그야말로 헛될 뿐이다.
전화상담 수련 중에 몇 군데 시험삼아 시도를 한다. 무언가 달콤한 미끼를 내밀고 이를 빌미로 의지를 내세우고 납득시켜 관철하려고 애쓸수록 상대는 반발하여 단단한 껍질 속에 들어앉는다. 아예 듣지 않으려는 이를 불러내려고 온갖 감언이설을 다 동원해야 했다. 그럴 때면 낯 간지럽기도 하다. 가끔 공격적인 이도 있어 무지막지한 말로 나를 아연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기도 하나의 세상이어서 나름의 법칙이 존재하므로 이를 교감으로 따라야 한다. 이건 말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메뉴얼에 따라 얘기하는 건 컴퓨터가 더 잘하지 않던가. 앞으로 없어질 직업 중 일이 순위가 의사나 변호사라고 했다. 적절한 법조문을 찾아내고 읊는 건 변호사보다 인공지능이 더 뛰어날게다.
어느 날 저녁 상담한 이가 아닌 대리인이 전화를 했다. 지하주차장에서 차 시동을 걸다 말고 멈추었다. 고분고분 들어주는 데도 다짜고짜 쫓는다. 만만하게 여기는 건가. 자기 주장만 옳다고 하여 내 말은 아예 듣지 않고 떠들어댄다. 이를 지적하면 말을 바꾼다. 상황에 따라 원칙이 바뀌기도 하는 게 좋지 않다. 나중 인신공격으로까지 일삼는 것도 심상치 않다.
"헌데 누구시죠? 상대를 확인하고 쫓으려면 먼저 자기를 밝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말이 왜 자꾸 바뀝니까? 이건지 저건지 용건을 분명히 말씀하세요!"
아, 말을 하면 할수록 어렵다. 언성을 높이는 순간 마음속 작정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지금 이 사람은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 온갖 호소를 하다가는 자기 말의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기만 한다. 이를 견뎌내야 하는 내 소양도 멀었다. 지지 않고 상대를 깨뜨리기 위해 말을 원천봉쇄할 궁리만 거듭하지 않는가.
말을 잘 하려면, 우선 정확한 발음으로 억양도 주의해야 한다. 자신감을 갖고 소신 있게 말하며, 하려는 이야기 주제에 맞는 근거나 이유를 댄다. 아울러 사례와 경험 등을 덧붙이는 것도 좋다. 확신에 찬 어조로 정리하여 상황에 맞게 말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 말을 앞세우기보다 진심으로 설득하려는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
Philip Wesley, Lamentations Of The Heart. et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