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를 지나가는 구두닦이를 불렀다.
"아깐 자리를 비워서.....지금 갖고 가서 닦을 수 있나요?"
"안됩니다."
월정액제로 닦는데, 회의를 하고 상담을 하느라 비운 틈에 다녀간 모양이다. 오후에 만날 사람도 있어 재차 사정을 얘기하는데 의외로 퉁명스럽다.
"그러지말고 이번만 사정을 봐서 닦읍시다."
"안된다니까요. 저도 지금은 다른 사무실을 돌아야 해서 곤란합니다."
"지금 여기 계시니 부탁하잖아요."
"구두를 갖고 가면 나중에 한 켤레를 들고 또 와야 되잖아요."
"한번 더 올 수도 있잖아요. 그 정도 편의도 못 봐줍니까?"
"그렇게는 안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어떻게 일일이 사정을 봐줍니까?"
"거참!"
구두닦이가 돌아간 뒤에 대화를 듣고 있던 옆 동료가 화를 낸다.
"무슨 저 따위 사람이 있어요?"
"그러게요. 나이도 들어 알 만할 텐데, 사람이 기본 자세가 안되어 있네요."
다음 달이 되어 월정액을 징구하러 온 구두닦이에게 그만 닦으라고 일렀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한주에 두 번씩이면 싸게 닦는 거라고 한다. '돈 문제'가 아니라고 딱 잘라도 갸웃하면서 도통 모르겠다는 몸짓이다. 대신 건너편 빌딩 앞 거리 구두닦이에게 직접 가서 닦기로 했다. 일면 번거롭고 불편하지만 필요한 일이니 그 정도야 감수해야지. 다행히 그쪽 구두닦이는 고집은 있겠지만 표정은 선하다. 구두를 닦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던진다.
"여기서 얼마나 닦으셨어요?"
"한 십년 됩니다."
"그렇게 근육을 계속 움직이면 저녁에 힘드시겠어요."
"당연하지요. 그래도 어떡합니까? 제 일이니 감수하는데, 아들은 제 편이라 가끔 어깨라도 주무르지만 딸은 그렇지 않네요."
"하하, 여식애들이 대개 그렇지요. 용돈이라도 듬뿍 줘 보세요."
"그것도 그래요. 아들은 별로 돈이 필요치 않다는데 딸애는 뭔 용돈이 그리 많이 필요한지...."
"그건 그렇고, 저쪽 빌딩 안에서 구두 닦는 분을 아십니까?"
"아, 그 사람이오! 나 원, 재수 없는 녀석입디다."
"뭔 일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글쎄, 언젠가 술 한잔하자고 해서 나갔더니....."
다음부터 줄줄 쏟아지는 욕과 원망들. 얘기인즉 자기 이익을 차리기 위해 이것저것 캐묻고 부탁하더라는데. 다시는 안보겠다며 일어섰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호감을 줄 수 있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구두를 닦기 시작하여 몇 개월이 지나자, 인제 들어서기만 해도 아주 싹싹하다. 구두약도 많이 발라 제법 꼼꼼하게 닦는데 그게 마음에 든다. 허긴 머리 깎는 것만 해도 널린 게 이발소나 미용소지만 아무 데나 들어가지 않잖은가. 급해서 생각 없이 들어간 곳에서 어떤 미용사는 가위로 한번 휘돌리고는 '끝났다'고 했다.
"벌써요?"
반문해도 '무슨 얘기인가' 하는 투로 되받는다.
"그럼요!"
그게 아무렇지 않은 듯해도 다음 날이 되고, 또 다음 날이 되면 점점 머리 스타일이 이상하다. 그래서 결국 익숙한 곳에서 정성 들인, 길들인 사람에게 쫓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구두를 닦거나 옷 다림질하는 기본이야 군대에서 지겹게 단련 받았으니 이 땅의 남자들이라면 누가 못할까? 그걸 스스로 하는 이상으로 잘하는 이에게 당연히 쫓아가야겠지.
그 날도 구두를 닦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도중에 어떤 아주머니가 롤러브레이드를 신은 딸애를 데리고 와서는 기웃거린다. 당연히 얘기를 끊었는데, 딸아이가 성가셔서 전하려는 얘기가 집중되지 않는다. 또한, 쇼핑백에 들고 온 남자 신발을 내놓는데, 자기는 모르니 남편과 통화하라며 전화번호를 묻는다. 곧 전화가 올 거라는데.
"아니, 구두를 닦고 있어서 그런데 그 전화로 바꿔 주시지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아서 그래요."
결국 구두닦이가 손에 감은 천을 풀고 주섬주섬 자기 전화를 확인하더니 통화를 한다. 헌데 그게 걸려온 전화가 아닌 엉뚱한 그 전 전화이다. 계면쩍어 웃으며 마무리하고는 걸려온 전화가 없다고 하자 다시 아주머니가 남편과 통화한다. 이제 올 거라는데. 별 것 아니지만 일의 진행 과정은 더디기 짝이 없다. 전화상으로 통한 남편은 닳은 뒤축을 갈면 앞부분은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뿐이다. 당연히 갈아야 한다며 구두닦이는 내 눈치를 보더니 두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슬쩍 곁눈질을 던지며 변명하는 게 오히려 끄덕여진다. 살 땐 고급구두였겠지만 낡은 구두가 되자 아무것도 아니다. 수선해야겠지만 원형이 틀어질까봐 주저한다. 쳐박아 둔 동안 신을 수 없게 된 신발. 아내에게 그걸 갖다 맡기라며 시키지만 못 미덥다. 본인이 확인해야만 하니 별 수 없지. 모두 서투르고 익숙치 않다. 아량이나 배려도 부족하며 자기 앞가림만 하려고 한다. 또 다른 아주머니는 오만 원 들인 부츠 앞부분이 터졌다며 그걸 수선하는 방법을 꼬치꼬치 묻는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접힌 여분이 없어 곤란하지만 자기가 손으로 깁겠다고 한다. 본드를 바르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건 금방 떨어진다며 일축한다. 수선 후 신발을 찾을 시각에 대해 따지는 아주머니도 만만치 않다.
"여기서 사람 대하는 일도 예삿일이 아니네요."
"그럼요. 피곤치요."
"당연히 구두 박사님이어서 오는 사람들이니 잘해 드려야겠네요."
상대를 믿고 맡길 줄 모르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혹여 배려하면 그걸 이용하려는 나중을 걱정한다.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 서로가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세월을 보냈다. 이제 하지 않던 일도 익숙하게 해야만 하는 할 터이다. 틀을 바꿀 수야 있을까만 여기저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번 더 자세히 들어봐야겠다.
Chamras Saewataporn, 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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