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을 간다. 몇날 며칠 친구들과 무시로 만나 머리를 맞대고 작당하여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즐겁게 먹고 놀고, 자유도 만끽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돌아오는 우리 꼴이 말이 아니다. 그게 먹고 자는 게 부실해서이다. 서로 몰골을 보며 웃었다. 입을 모으는 게 '열일 제쳐두고, 가서 씻은 다음 누워서 한잠 푹 자고 싶다'고 했다. 말이 캠핑이지, 처음부터 일이 꼬였다. 잠자리를 찾아 다니느라 발품 팔아 힘들었고, 간신히 짐 풀고 밥을 하려는데 알콜 버너가 쉬이 작동되지 않았다. 어찌어찌해서 끼니야 떼우지만 설익은 밥에 싸간 김치라곤 시어서 입에 넣으면 오만상이 된다. 혹시나 싶어 끓인 라면도 꼬들꼬들해 억지로 넘긴다. 이것저것 주워 먹어도 제대로인 것이 없으니 나중에는 맥이 빠진다. 물론 이도 추억이 되겠지만 '집 떠나 개고생'이란 말이 실감났다. 그럴 때 울컥 시골집 이모를 떠올리곤 했다.
가마솥에서 밥 끓는 김이 가시기 시작하면, 뺨에 숯 검댕이를 묻힌 이모는 점점 황홀한 표정이 되어 부엌을 기웃거리는 내게 소리쳤다.
"원아, 내사마 세상에 밥 냄새가 젤 좋타!"
이모를 따라 코를 벌름거리면 정말 맛있는 밥 냄새에 자극되어 저절로 침을 '꿀꺽' 삼킬 정도였다. 밥이 뜸들 동안 식구들이 먹을 반찬을 챙기며 행복하던 이모는 하늘나라에서도 부엌을 자기 터전으로 삼고 있을지.
지금은 보편적이 된 즉석밥 시장의 '햇반'은 출시 당시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간편하게 조리하는 편리함을 강조했지만 사람들이 그걸 떫떠름해 했다. 지나치게 편리하다는 점이 직장에 다니는 주부들이 죄책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햇반을 앞에 놓고 앉은 남편들의 핀잔도 한몫했다. '아담 스미스'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칭찬'을 열망하고 '비난'을 두려워한다'는 '도덕감정론'을 얘기했다. 결국 햇반은 '편리한 밥'이 타인에게서 받게 될 비난을 고려하지 못한 컨셉이라고 결론 짓고, 이에 발상부터 바꾸었다. 그래서 '집에서 엄마가 짓는 밥처럼 맛있는 밥'으로, 비난을 두려워하는 마음까지 세심하게 보살핌으로써 비로소 사람들에게 다가가게 되었다. 세상에 밥 짓는 일만큼 숭고한 일이 어디 있을까. 밥은 우리 생활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집에서 밥 냄새가 사라지면 이상하게도 사람 사는 냄새가 가신다고 한다. 식당에 가도 밥맛이 없으면 음식이 '꽝'이다. 알게 모르게 쌀이 주식이던 개념이 사라지고 있지만 아직 '삼시세끼 밥이 보약'이라고 부르짓는 나를, 집에서 영 못마땅해하는 건 왜일까.
Mike Oldfield, Piano Pi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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