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우리가 바라보던 봄

*garden 2016. 4. 15. 21:08




불을 켜두지 않아 거실이 어두컴컴하다. 한참 전부터 스마트폰에만 눈길을 두고 있는 아이를 슬쩍 찔렀다.
"배 고프지 않냐? 나가서 고기라도 먹을까?"
"에이, 귀찮아요."
"그럼, 밥이라도 차리든지."
"아침에 엄마가 전기밥솥이 고장났다고 투덜거리던데요."
"그래? 냄비 같은 것도 있잖아."
"저는 냄비에 밥을 못하는 데요."
"이 녀석 봐라."
허기가 밀려든다. 별 수 없이 말 꺼낸 내가 나서 싱크대 앞에서 떨걱댄다.
"가만, 쌀은 어디 있냐?"
"이 정도면 우리 둘이 먹을 수 있겠지?"
"야, 인덕션 불이 왜 이렇게 안들어오냐?"
줄기차게 이어지는 물음에 처음에는 반색이던 아이가 차츰 불안한 눈길이다. 늘 하던 일이면 모를까. 갑자기 맹그로브 나무 우거진 정글 늪가에 섰는데 조용하면 이상하잖아. 멋적어 그만 입을 다물었다. 쌀을 씻어 얇은 냄비에 앉힌다. 이게 언제 적 쌀일까. 오랫동안 집에서 밥을 먹지 않았으니 메마르기도 하지만 얇은 용기에서 설익을 수 있으므로 물을 찰박거리도록 부었다. 냄비 뚜껑은 들썩거리지 않게 묵직한 도자를 얹어 안정시켰다. 밥이 끓어 어느 정도 김이 나온 다음 센불을 낮춰 오래 뜸들이며 밥 냄새를 맡았다. 맞아. 예전 이렇게 밥을 했어. 기억을 더듬는 동안 전기밥솥이나 편리한 기기 등에 의존하는 아이에게 불현듯 한마디하려다가 참았다. 오래 참고 견디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판국이다. 괜한 잔소리일 뿐이지."
요즘 아이들 성정과 닮았는지 날씨마저 하루살이이다. 어젯밤 어두운 밤길을 걸어오면서 찬바람에 옷깃을 여몄는데, 아침이 되자 하룻만에 꽃이 모두 피었다.
"이게 뭔 일이래?"
함께 엘리베이터로 내려간 아파트 윗집 모녀가 호들갑을 떨며 눈을 휘둥그레 뜬다.
매화나 살구꽃 등이 부스스 깨어난 다음 숨 죽이고 시간도 멈춘 듯한 세상에서 떨리는 호기심으로 바라보던 봄은 없다. 조바심도 없이 벚꽃과 목련까지 단번에 피어서는 한 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산지사방 꽃잎을 흩뜨리는 바람에 얼떨떨하다.













Ethereus, Cannon Vari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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