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오월 숲

*garden 2016. 5. 3. 14:37






















"우리 시골에 내려가 살까?"
로망으로 내지르는 말이 아닌 것을 안다. 그러기에 반응이 없다. 사회생활을 마친 친구들이 손바닥 만한 땅뙈기에 홀로 내려가 있는 것을 보았다.
"다녀가라는 데도 통 안오네."
어느 때 찾아가면 그을은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붉은 흙과 무심한 나무와 시린 하늘, 맞은편 산 삐죽삐죽한 바위들과 가파른 경사지가 막막하다. 굳이 여기 왜 와 있을까. 누구 말 섞을 사람이라도 있어야지. 호젓함을 벗삼아 고된 하루 일과를 지우며 술잔이라도 기울일 수 있는 누구라도 있다면 그나마 견디겠지만. 봄날이 사람을 가만히 있게 하지 않는다. 주말 서울 근교 산에 올랐더니 북새통이어서 어리둥절했다. 다들 입 모아 산이 좋다는데. 와글거리는 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한닷새 적막 산중에 데려다 놓아도 같은 말을 할까. 도시생활에 젖은 이라면 조그만 불편함도 참지 못해 안달한다. 반면에 어릴 적 시골에서 자라 야생 적응이 의외로 잘 되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내 안 유전인자는 야생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아까 적부터 산새 한쌍이 숨바꼭질을 한다. 울음소리가 명쾌하여 내가 새가슴이다. 새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숨 죽이고 머물렀다. 간혹 남실바람이 불어온다. 가쁜 숨을 가라앉히며 바람에 띄울 것처럼 날개를 편다. 인적 드문 구릉이다. 조망도 좋다. 오랫동안 내버려 둔 무덤 두어 기가 주저앉는 중이다. 규모에 비해 묘비석도 없다. 그래도 풀섶을 뒤지자 보물이 지천이다. 애기꽃, 양지꽃, 제비꽃, 가시붓꽃이 나붓이 숨어 있다. 간혹 보이는 고사리에 시골 이모와 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미꽃이 핀 동산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학교에 그려갈 일이 있었다. 앉은뱅이 책상에서 오후 내 몰두하는 모습을 기웃거리던 엄마가 숙제로 그린 그림을 보잔다. 영문도 모르고 보이는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좍좍' 찢은 엄마가 다시 그리란다. 나중 그림도 찢겨졌다.
"헛, 크레파스 색깔도 닳아 없는데...."
원색을 칠할 수 없어 다른 색깔의 몽당 크레파스를 섞어 조심스레 색을 만들어 낸다. 그게 너댓 번쯤인가에서 엄마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조마조마한 나보다 오히려 엄마가 걱정이다. 비틀거리며 무릎을 세우고, 어둑한 부엌으로 바삐 내려가는 자그마한 등을 영문도 모르고 바라보았다.
할미꽃을 보자 그때가 아련하다. 막 깨어난 풀벌레들과 힘 받은 햇볕을 즐기며, 불러도 오지 않는 이름들을 가만히 떠올리는 동안 먹먹해졌다. 숲이 부풀어오른다. 감미로운 풀향기가 진해졌다. 세상을 푸르게 푸르게 채우는 것을 종일 지켜보았다.








Stella Incognita, Med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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