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요!"
"왜?"
"어른이 되면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하하, 임마.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야지. 그러려면 어떤 음식이든 골고루 많이 먹고 사자나 곰처럼 건강해져야겠지!"
어른이 되는 관문이 있었던가. 자각 못하고 행한 오류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과정이어도 가급적 그런 훈련을 극소화시키고 무난히 어른으로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행여 알 수 없다. 그렇게 되어선 만만찮은 살이에 옹이라도 낀다면 고비를 넘어서지 못해 쓰러질 건 뻔한 일. 아무려면 어때. 무작정 나이 들어도 노련하게 삶을 지탱해나가고 싶은 적도 있었다. 스물 중턱을 넘어서면서 서른이 되고 싶어 얼마나 안달했던가. 서른이 된 다음에는 순식간에 마흔이 되고 싶어서 늘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러던 게 세월을 흘려 보낸 지금 돌아보면 아찔하다. 나이에 짓눌려 앞도 못 가눌 지경이라면 믿을까. 아이도 마찬가지. 나이 들면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것을 지금쯤은 어렴풋이 깨닫지 않을까. 어디나 활보하며 마음껏 소리치고 싶은 나이였던 적도 있었지. 헌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다행히도 쫓아나간 아이는 지구 반대편을 떠돌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겨울 끝 무렵, 홀로 긴 그림자를 끌며 산을 헤매다가 문득 먼곳에 있는 아이를 떠올렸다. 연락도 쉽지 않은 거기서 어떻게 지낼까.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외로움에 절어있을 아이가 안타깝다. 종종걸음으로 내려와 통화한다. 그래도 어투는 집에서처럼 한가해야겠지.
"어떠냐?"
"괜찮아요."
"늘 괜찮다면 정말 그런 줄 여겨지잖아. 화상 통화로 바꿀까?"
"네, 그래요."
제 동생 짐작으로는 뱃살이 제법 나왔다던데. 우연히 올려둔 SNS 사진 한장을 들여다보다 먹먹해진 게 며칠 전. 기죽어 생기 없는 아이에게 한 모금 온기라도 전해주고 싶었다.
"여긴 겨울이 싱겁게 끝나버렸어. 거긴 가을이겠구나!"
"네, 지금 거리에 낙엽이 물드는 중이에요."
"필요한 것 있으면 얘기해. 겨울 물품으로 사 보내마."
"생각해보고 말씀 드릴게요."
"내일이라도 챙겨 보내게 미루지 말고 목록을 바로 올려."
이것저것 챙겨 보내며, 일간 시간 내 여행 겸 한번 다녀가겠노라고 일러두었다. 그러더니 보낸 물건을 받았다며 좋아하던 아이가 얼마되지 않아 돌아와 버렸다.
살아가며 기대고 의지가 될 곳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피붙이는 얼마나 든든한 언덕인가. 그리움이란 건 씨줄처럼 불쑥 자라나 날줄을 튼튼히 엮을 것처럼 자란다. 불현듯 돌아와도 반겨줄 식구들이 있다는 것도 눈물겨운 일이다.
공항에서 만난 아이는 멀뚱멀뚱했다. 제 애비를 힐끗 보고는 '씨익' 웃었을 뿐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고 있다. 정산한 다음 차를 빼고 대로로 빠져나오자 비로소 아이 표정도 풀린다. 차창을 내리자 바깥 소음이 들어와 시끄러워졌다. 공기를 환기시켜 이 땅 냄새들로 차 안을 채웠다.
"덥지? 봄도 없이 바로 여름이 왔나부다."
Nicole Laroche, Beyond the trail of te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