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겪는 극심한 봄 가뭄. 다목적댐인 보령댐 공사 당시 수몰된 지역 도로가 드러났다. 이전 보령시 미산면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이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보령댐은 이년 전 가을 가뭄으로 닥친 식수 파동때보다 더 낮은 저수율이라고 한다.
비가 오지 않으면 자나깨나 걱정을 달고 사는 할머니. 볕을 가리려고 덮어쓴 머릿수건 앞자락을 들춰 심심하면 하늘을 쳐다본다.
"비가 좀 와야 될낀데...."
해 뜨기 전, 밭으로 가는 논둑길 단단한 바닥이 갈라져 금 갔다. 파릇하게 싹튼 풀도 지리멸렬한 흙먼지만 덮어쓰고 있다. 할머니 기원이 하늘에 닿아서일까. 오후 무렵부터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기다리던 비가 쏟아졌다.
마른 흙을 적신 비는 저희끼리 몰려 다니며 여기저기 물길을 만들었다. 이곳저곳 물받이를 놓고 분주한 할머니 걸음도 신 났다. 와글거리는 빗소리. 오랜만에 젖은 바람 냄새가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헌데 제법 센비여서 흙이 질척해지면 마당을 걸어다니기 고역이다. 물기 든 고무신도 미끈거릴 뿐더러 딛은 바닥이 움푹움푹 패였다. 흙더미가 한움큼씩 달라붙는 것도 질색이다.
비가 그쳤다. 며칠 뒤 여기저기 수소문한 어머니가 기술자 몇 사람을 불러 모아 마당에 공구리를 쳤다. 댓돌에 흙을 마구 묻혀 둔다며 잔소리를 그치지 않았는데 그래서일까. 아니다. 속셈은 다른 데 있었다. 마당과 화단 한쪽을 허물고는 거기 광을 만들었다. 어둑한 광은 들여다 보기도 싫다. 광 윗단 평평한 곳에 장독을 잔뜩 올려 놓았다. 아, 볕 마중할 수 있는 공간이 근사하다. 어머니처럼 나도 광 위를 뻔질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동네가 보이는 전망대. 오르기만 하면 바람도 서성거렸다. 향기 근사한 매화가 기와지붕을 기웃거리거나 앞집 순희랑 뒷집 영희가 줄에 걸어둔 빨래 사이로 단발머리 휘날리며 마당을 쪼르르 가로질러 가는 것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는데.... 그때부터 우리는, 한동안 흙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