發憤抒情

오래 살아남기

*garden 2016. 8. 4. 09:48




부고를 띄우자 안면 있는 아주머니 몇몇과 한달음에 달려온 경희 어머니는, 표정이 상기되어 송글송글한 이마 땀을 훔칠 새도 없이 주저앉아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곡성이 터져나온다. 서러운 울음 소리가 커졌다. 그게 나중에는 병원 장례식장이 떠나갈 듯한 대성통곡으로 이어져 다른 곳 문상객이 기웃거릴 정도였다.
경희 어머니는 오래된 어머니 친구였다. 가까이 살아 하루에 몇 번씩 마주치는 건 예사. 콩 한 개도 나눠먹고, 어떤 때에는 감정을 토로하다가 다시 안볼 것처럼 대판 싸우기도 하고, 다음 날은 모른 체 풀어져 언제 그랬냐는 듯 손뼉 치며 깔깔거리기도 하는 이웃사촌이다. 경희 아버지는 효자이기도 하고, 부지런하기로도 소문 났다. 비 오거나 눈이 내리거나 사시사철 그집 앞은 비질로 말끔히 쓸려 있다. 일찍 남편을 여의어서 청상과부인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그 부부는 비좁은 건넌방에서 지낼지라도 어른은 안방에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빠뜨리는 법이 없었다. 밤 늦게 아버지 손에 들린 맛난 먹거리라도 있으면 다음 날 챙겨 경희네에 갖다주곤 했는데, 심부름은 내몫이다. 가면 안방부터 들러 인사를 드렸다. 지성으로 잘 모신 덕분인지 거뜬히 백수를 넘긴 할머니. 한지 바른 빗살문에 햇살이 어린다. 불도 켜지 않아 어둑한 방. 대개 쪽진 머리를 풀어 참빗으로 빗기 일쑤였는데, 뿌연 빛사위 속 일순 깡마른 노인네 모습이 무섭기도 하다. 초등학생인 나를 앉히고는 며느리가 밥을 주지 않는다고 오물거리는 입으로 흉을 늘어놓았는데, 요즘 생각하면 노인성 치매였던가 보다. 백살이 넘어가면서 흰머리보다 검은 머리가 더 많아졌다. 작은 체구에 긴 머리카락을 방바닥에 늘어뜨리고 빗고 또 빗는 모습을 보노라면 섬뜩하다. 그래도 당신들은 어떤 상태이든 어른이 오래 사시는 것만이 감사해 하늘처럼 받들었다. 나야말로 경희나 경석이보다 그네 사촌인 혜영이를 더러 떠올린다. 한두어 살 많았을까. 어느 때 집안일로 온 식구가 멀리 다녀가게 된 날. 학교 때문에 따라가지 못한 나만 남게 되었다. 그 밤 혼자 두고 가는 게 걱정된 어머니 부탁으로 저녁을 먹고 혜영이가 집에 왔다.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먼 발치를 지나던 교복 차림의 혜영이를 보았다. 그냥 지날 법도 한데 기꺼이 쫓아와 축하한다. 맞잡은 두 손이 부드럽다. 웃음이 해맑다.

오래 사는 게 축복일까. 여행도 하며 유유자적하겠다고 작정했는데 불안한 미래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은행에 있다 퇴직한 친구들은 깐깐한 성품 탓에 쉽게 다음 직장을 얻지 못하고 대부분이 치킨집을 연다고 한다. 그게 잘 되면 다행이다만.
작년 이월 이십삼일자 타임지 기사는, 그해 태어난 아이가 라파마이신을 복용하면 평균 기대수명의 일점칠칠 배, 즉 백사십이 세까지 살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소위 일컫는 수명 백 세라는 건 백오십 살까지의 삶이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세계적인 기업 구글은 미래신사업으로 노화방지에 대한 연구에 착수한 지 오래이다.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게 인지상정, 이제 그게 당연할수록 고개를 내젓는 건 왜일까. 이천십년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OECD 국가들 중 단연 으뜸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소득의 양극화로 빈곤율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천십삼년 기준 육십오 세 이상의 노인들 중 국민연금 수급자는 겨우 삼십이 퍼센트에 불과하였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도 예외가 아니어서 독거노인 수만 육백여 만 명을 넘어섰고, 그 중 절반 이상이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또한, 이백여 만 명은 먹거나 입고 자는 등의 모든 면에서 자립능력을 상실한 '노후파산'의 삶을 이어간다. 일본 NHK 취재팀은 이러한 노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다큐멘터리로 방영하여, 미처 다루지 못하던 충격적 일상을 고발하였다. 중요한 것은 빈곤한 노인들이 전 생애를 한눈 팔지 않고 부지런히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게 더욱 의아하다. 가마다 야스시, 이타가키 요시코, 하라 다쿠야의 '노후파산'은 저마다 나름대로 노후를 준비하던 사람들이 위기에 몰려 있는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를 무시하고 지나치기 어려운 것은 외면하고 싶지만 직시해야 하는 바로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복지를 강화하라고 부르짖지만 이는 빈 곳간에서 곡식을 내놓으라고 소리치는 헛된 아우성일 뿐이다. 어쩔 수 없이 오래 살아야 하는 우리, 부디 고장이나 나지 말아야 할텐데, 수리비로 매번 큰 돈이 나간다면 그것 또한 어렵다. 이런저런 생각을 잇다 보면 다다르는 결론, 장수는 그저 악몽인가.










Nightnoise 'Pure Nightnoise' 11('2006), Morning in 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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