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소식인 아버지. 끼니에 밥 반 그릇이면 충분했다. 겉보리쌀을 잔뜩 깔고 그 위에 쌀 소량을 앉히는 이층밥. 아침 나절 밥 뜸드는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면 우리는 아침 내내 '짹짹'거리며 파닥이다가도 뻔질나게 부엌을 들여다봤다.
"야들이 오늘따라 와 이래 정신 없게 만드노? 저기 상부터 펴놔라아."
드디어 밥이 지어졌다. 솥뚜껑이 열린다. 뿌연 김이 왈칵 오른다. 순식간에 부엌이 오리무중이다. 맛있는 밥을 두고 빨라지는 어머니 주걱손. 맨 윗부분 흰 쌀밥을 가장 먼저 담은 건 아버지 몫이다. 다음에는 솥단지 안을 뒤집었다. 혹여 밥알 하나라도 놓칠까봐 당신 손이 사뭇 분주하다. 우리는 대부분 깡보리밥이다. 지난 번 내린 눈이 담벼락 아래 희끗했다. 앞마당 독에서 꺼내온 한겨울 김장 무가 시큼한 냄새를 풍긴다. 매운맛을 삭이지 못하는 동생은 잘게 자른 무를 씻어 먹었다. 나와 어머니만 아무렇지 않게 우적우적 씹었다. 아버지는 밥 그릇에 담은 밥을 대패로 깎듯 꼭 반을 남기셨다. 어머니는 그래도 그릇 소복하도록 담아 드리기를 그치지 않았다. 어느 때 반찬 가짓수가 더 놓인 날, 입맛이 당겨서인지 식구들이 평소보다 밥을 더 먹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밥을 딱 반 그릇만 들었다. 나물 반찬이나 생선 등을 몇 점 드신 다음 나머지 밥을 국에 말아 드시기를 삼차방정식 푸는 것처럼 해치운다. 넥타이매기, 팔목시계차기, 양복차려입기. 댓돌에서 구두신기, '어험!' 하고 헛기침하며 대문을 나가는 시각이 늘 일정한데.....
뭔가 못마땅해 심사가 뒤틀려 있어도 어머니는 아침에는 감히 드러내지 않았다. 아버지가 계실 동안에는 늘 긴장했다. 당신 구둣소리가 골목 저만큼에서 멀어지며 들리지 않게 되자 비로소 엉덩짝을 아랫목에 푹 눌러 앉히며 뜨다 만 밥에 달려들었다.
나도 국이 있어야 밥을 먹고, 남은 밥은 더러 말아먹는 편이다. 그게 간편하기도 하거니와 식사 마무리가 제대로인 듯해서였는데, 이를 보는 식구들은 못마땅한가 보다.
"왜? 내 얼굴에 뭐가 묻었냐?"
"아니아니, 저는 국에 말아 먹는 게 싫어서요."
이 녀석은 내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아무리 권해도 절대 먹지 않는다. 그러다가는 폭식을 한다. 걸신 들린 듯 눈 깜짝할 새 해치운다. 찬밥을 예사로 먹는다. 전자렌지에 넣어 데워 먹으라고 해도 고개를 내저었다. 심지어 냉동만두를 거부감 없이 씹어먹는다.
"그게 맛있냐?"
"네, 먹을 만해요."
"음식은 따뜻해야 훨씬 먹기가 나은데."
얘는 인류가 불을 발견하기 이전 시대로 돌아간 걸까. 먹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주절주절 늘어놓아봐야 소용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나뿐인지. 그렇게 좋아하던 짜장면을 귀국하고선 입에 대지 않는다. 이즈음엔 중국음식점에 가 짬뽕을 시키는데, 면만 건져먹고 맛있는 국물을 남겨 두었다. 먹는 건 습관이다. 습관을 쉽게 바꿀 수 있는 걸까. 식구들 식성이 거의 같은 편인데 왜 얘만 돌출한 듯 다를까. 한이틀 친구들과 늦은 시각까지 모여 있던 아이가 오랜만에 식탁에 앉았다. 겸연쩍은 듯 제 애비 먹을 것까지 챙기는데 실상은 자기가 허기진 눈치이다. 곧바로 챙겨먹는 밥을 이제까지와 다르게 국에 말아 해치운다. 은연중 봐오던 기억이 작용한 걸까. 어쩌면 아버지도 나도 정해진 습관 속에 기억이나 기호도 모두 꿰맞추어야 직성이 풀리는 건 아닐까.
밥상머리에서 늘 듣던 이야기
먹기 전에 음식에 대한 감사함을 가진다.
상에 앉아 다리 등을 떨지 않는다.
숟가락, 젓가락 등을 바르게 사용한다.
입에 밥을 넣고 말하지 않는다.
소리내어 음식을 씹지 않는다.
반찬이나 된장국 등을 수저로 휘적이지 않는다.
짜게 먹지 않고 음식을 골고루 먹는다.
밥을 남기지 않는다.
혹시 기침 등이 나올 때는 식탁에서 멀리하여 한다.
자기가 먹은 빈 그릇을 개수대에 치워 놓는다.
Dana Dragomir, Salome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