發憤抒情

푸르름의 끝

*garden 2020. 10. 15. 08:50





"느그 집이 저기네."
"맞아. 동네서 가장 큰 나무 두 그루가 여기서도 보여."
심심할 적마다 올라가는 동네 건너편 동산. 아이들과 경쟁하듯 뛰어올랐다. 한켠에 모여서서 동네를 어림짐작한다.
"우리 사는 데가 손바닥 만하네."
모여 사는 모습이 별것 아니다. 어찌보면 소꿉장난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곳. 그래도 올망졸망하게 늘어선 곳은 복잡다단하기 짝이 없다. 거미줄처럼 사방팔방 뻗어나가는 길. 바닷가 바위 위 따개비처럼 붙어있는 지붕으로 이어진 세상. 이곳저곳으로 통하는 수많은 길. 아마 누군가는 바쁜 걸음으로 골목을 나서겠지. 골목 밖 가게에서 또 다른 이는 필요한 물건을 고르고 있겠지. 그 앞 약국 안에서 약사 아주머니는 하얀 얼굴에 안경을 고쳐 쓰며 지나는 사람들을 살필 거다. 짤랑대는 엿장수 가위 소리가 난 것도 같다. 멀리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여기서도 들린다. 귀 기울이면 여러 가지 소음이 그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본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이 산도 성하지 않다. 돌아보면 기슭 여기저기마다 야금야금 파지고, 산 중턱을 잘라 신작로를 낸 바람에 흉물스런 속살을 드러낸 바위 절개지도 있다. 도시가 커지면서 여기도 어김없이 부푼다. 산을 두어 개 넘어가면 조만간 새 기차역도 생긴다고 했다. 다들 잘 되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어느 천년에. 언감생심이어도 이곳저곳이 어느 때부터 조금씩 바뀐다.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겨울 끝에 눈이 내렸다. 희끗희끗한 눈이 쌓이기도 전에 비가 내렸다. 화단 나무들이 촉촉한 생기를 받아 마악 움틀 참이었는데. 학교에서 돌아왔더니 화단 나무가 잘려 있었다. 어이 없이 동강나 누워 있는 나무를 보고 기겁했다.

철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우리 식구처럼 마당에 우뚝 서서 말없이 위안을 주던 나무. 내 두 팔로도 감싸 안을 수 없던, 그 튼튼한 나무가 저리 베어져 있다니. 우뚝해서 동네 어디서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던 이정표가 한낱 목재 동가리로 누워 있는 모습을 보는 건 끔찍했다. 푸르른 생기를 지우고 풋내를 진동시키며 넘어간 커다란 나무를 보자 그야말로 끔찍하다. 더 이상 집 안에 가득한 이 냄새를 맡고 싶지 않았다. 아아, 어머니가 밉다. 이 집을 얻을 때도 '우람한 나무 자태에 반해서였다'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분이.
허긴 요 며칠 아침 밥상머리에서만 겨우 볼 수 있던 어머니 모습. 뭐가 그리 바쁜지 학교에서 돌아오면 텅빈 집이 싫어 책가방을 내동댕이치고서도 괜히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대지 않았던가. 주구장창 틀어 놓던 라디오가 몇날 며칠 선반 위에서 침묵하고 있던 게 그래서였나. 이런 난리를 계획하고 있었을 줄이야. 화단을 난도질한 사람들은 대문을 뜯어 낸 다음에야 그 큰 아름드리 나무를 들어낼 수 있었다. 나무가 실려 나가는 걸 보며 나는 까닭없이 끙끙 앓았다.













Sean Michael Paddison,
Celestial Bal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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