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금지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신경을 긁는 날카롭고 긴 소리 다음에 이어지는 적막감. 어느 집에선가 개가 요란스레 짖었다. 짙게 들이찬 어둠이 들썩이도록. 어제는 끝났으며 오늘은 네 시간 뒤에야 시작될 것이다. 모든 게 정지된 시각. 아랫목에 기대앉은 채 꾸벅꾸벅 졸던 어머니가 가위에 눌린 듯 놀라며 일어섰다. 부엌으로 내려가 연탄불을 확인한 다음 다시 들어왔다.
"에효, 벌써 하루가 지난거야!"
열린 아궁이만큼 입을 벌리며 두 팔을 맞잡아 몸을 뒤틀며 기지개를 켰다. 순간 귀를 기울였다. 골목 바깥쪽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 고개를 저었다. 저건 아냐. 무게감이 떨어지고 어딘가 가벼워. 차 한잔 끓일 시간이 지났을까. 드문드문한 구둣발 소리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이번에는 틀림없어. 통금 사이렌이 울리기 전 돌아오는 법이 없다. 술을 마셨거나 그렇지 않거나 간에 이 시각까지 무엇을 하는 걸까. 아버지가 침을 삼키는듯 낮은 기침과 함께 문간에 들어섰다.
윤미 아버지는 집 안에서나 밖에서도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순하고 소심한지 사람들과도 얼굴 마주치기가 어렵다. 아침엔 양치질도 해야 하고 씻어야 하므로 우물가를 거치지 않을 수 없는데, 쉽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이른 시각 아무도 없을 때 후다닥 다녀가지 않을까. 대신에 남희 아버지는 런닝셔츠 바람으로 아무렇지 않게 우물가에 나타나 가끔 아버지와 인사를 했다. 허나 이도 어색함을 지우기 위한 것이지 속을 드러낸 이야기를 나누는 건 아니어서 한두 마디를 거치면 말이 겉돌았다.
남희나 윤미가 겨우 대여섯 살밖에 되지 않으므로 이전처럼 아침나절 우물가가 북새통이 되는 일은 드물다. 이는 아마도 여러 집을 세놓고 거치면서 어머니가 의도한 바가 반영된 게 아닐까 싶었다. 어떻거나 한 지붕 세 가족이 남자들에게는 의미가 없었지만 여자들은 나름대로 우물가에 모이면 깔깔거리면서 웃음소리를 드높이는 걸 보면 서로간에 수긍하면서 상대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듯했다. 어머니 성미도 할 말을 뱉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데 그네들에게는 막상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물 맛 차암 좋다!"
막 길어올린 우물물을 한모금 들이키며 어머니가 말하자 윤미 어머니와 남희 어머니가 맞장구를 쳤다.
"정말 어디서 이런 물 맛을 볼까."
"그윽하니 깊은 물 맛이 마치 꿀맛같다니까요."
정말 그럴까. 깊은 우물 속으로 두레박을 떨어뜨리며 새삼 성스러운 기운을 길어올리듯 나도 숨을 싶게 쉬었다. 두레박이 기우뚱거리다가 물이 담긴다. 우물 안에 빛이 산란하여 여러 조각난 그림이 그려졌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길어올려진 물에서 김이 무럭무럭 났다. 이를 세숫대야에 담아서는 푸드득대며 씻는 동안 어머니와 셋방 여자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누며 두런거렸다. 나물을 다듬거나 쌀 씻는 손을 멈추지도 않고서는.
내가 집에 오면 저만큼 있던 병아리 닮은 애들이 쫓아왔다. 윤미나 남희는 연유 없이 나를 반기고 따라다녔다. 남동생이 나를 부르는 것처럼 처음에는 '형아'라고 불러서 어른들은 물론이고 듣는 이들마다 '그렇게 부르면 안된다'며 바른 호칭을 가르쳐도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여동생은 진작 윤미나 남희를 싫어했다. 나를 빼앗기지 않겠다고 기를 쓰다가도 정작 걔들이 보이면 피했다. 나야말로 조막만한 이 아이들이 싫지 않다. 생김새나 성격이 다른 두 아이가 경쟁하듯 번갈아가며 나를 부르는 소리에 웃음을 보이며 귀를 쫑긋거렸다. 나대로 할 일이 있어 방에 쳐박혀 있을 때도 아이들은 대청 바깥을 서성이며 끈질기게 내 기척을 찾아 기웃거리곤 했다.
재잘대며 흘러내리는 물처럼 우리도 쉼없이 흘러 알지 못하는 세상으로 나아갔다. 가을은 순식간에 와서 금방 끝났다. 그래서 이름이 '가을'인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른 서리가 한움큼 내려앉아 있기도 했다. 너도나도 귀향을 꿈꾸는 계절. 멀리 떠난 사람도 집과 고향을 떠올리고 옷깃을 여민다. 우물가에서 밀린 빨래를 하다말고 어머니가 남희 어머니한테 슬쩍 물었다.
"요즘 남희 아버지가 우예 안보이노?"
아쉬운 가을이 끝나도록 남희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Bill Douglas, Autumn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