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학교에 가기도 전인 시각에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작게 말하는 법이 없다. 너도나도 소리를 질렀다.
"이걸 왜 여기에 쌓아뒀나? 그리고 개수가 모지라는 거 같은데."
"......"
"어이 조씨, 사람들 좀 불러요."
"다 오라고 합니까?"
작업복 차림인 사람들이 벌써 여기저기서 뚝딱댄다. 개중 한둘은 화단 구석을 파헤치다가 결국 담장도 허물었다. 십몇 년을 살아도 데면데면한 이웃집 아주머니가 자기네 마당을 가로지르다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쯤되면 쫓아와 삿대질해도 모자랄 판인데, 미리 일러 놓았는지 눈길 주다가는 반응 없이 들어가 버린다. 평탄정지 작업부터 했다. 이튿날째에는 자재가 들어와 쌓였다. 집은 이미 난장이어서 온갖 사람이 드나들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바쁜 어른들 틈을 슬금슬금 피해 다녀야 했다. 이리 채이고 저리 쫓기는 천덕꾸러기가 따로 없다. 어머니가 요즘 부쩍 입에 올리는 김 목수도 다녀가고, 알 수 없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공감을 표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우리가 눈에 띄면 소리쳤다.
"야들이 위험하게 그리 다니노? 저리 가야지."
여동생은 어찌할 지 몰라 울상이 되었다. 얼른 동생을 데리고 빠져나왔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 시시콜콜 캐묻기를 그치지 않던 어머니에게 우리는 어쩜 아무것도 아니었다.
주변에서들 정신 없이 설치는 바람에 매서운 겨울이 어떻게 끝났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수돗가 물 떨어지는 자리에 살얼음이 풀리는 기미가 보인다. 그렇게 뚝딱거린 다음 거짓말처럼 바깥채 한 동이 지어졌다. 아름다운 꽃이 피고 향기가 나야 할 화단을 차지하고 세워진 집을 어머니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비만 오면 진흙탕이 되어 곤란하던 마당도 콘크리트로 발라 말끔해졌다. 그 참에 짓이 난 어머니는 안방과 우리 방만 빼놓고 옆방도 세를 놓았다. 그 방은 진작 부엌이 별도로 있어 살림집을 차려도 괜찮았다. 단지 칸막음을 해 누가 봐도 안정감이 있도록 단속했을 뿐이었다.
바깥채에는 낯선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식구가 처음 세를 들었다. 아침이면 낯선 사투리가 우물가에서부터 그치지 않았다. 억척인 아주머니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도 순식간에 해치워 이른 아침부터 마당 옆 빨랫줄은 빌 틈이 없었다. 지금쯤 싹이 나 열매가 달려야 할 앵두나무가 있던 자리에 애들이 만만찮게 들끓었다. 그러다보니 우물가는 아침이면 시장통이었다. '야이 야, 너 뭐하고 있네.', '날래 저리 안가간?' 시끌시끌한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기를 펼 수 없었다. 아이들이 많아 강원도 아주머니는 미처 우리에게 눈길을 둘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머니는 혹시나 우리가 잰 척할까 봐 주지시키기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너희들 혹시라도 쟈들하고 다투믄 안된다!"
강제로 다짐 받지만 사실은 세들어 사는 여자가 어머니 성에 차지 않았다. 부엌에서 연탄불을 살피고 들어오다가는 들으라는 듯 짜증스런 말투를 내뱉었다.
"아오, 아침부터 밤까지 정신이 하나도 읎네."
어머니답지 않은 비명을 내며 무심간에 이런저런 불만을 토로한다. 이를 듣는 아버지는 가타부타 대꾸가 없다. 그건 집안일에 관여치 않는 성정 탓이니 무어라 탓할 수도 없다. 몇몇 가구가 살다 간 다음 남희네가 새롭게 이사를 왔다.
남희 아버지는 무뚝뚝하다. 마주치면 우리가 인사를 해도 건성이다. 자동차를 운전한다니 그런가 했을 뿐이다. 낚시를 좋아해서는 걸핏하면 달려가는 듯했다. 그게 결과물로 나타나 어느 날엔 어른 팔뚝보다 큰 고기가 아가미를 꿰인 채 서까래 받힌 나무 기둥에 걸려 있는 걸 종종 본다.
Dmitry Krasnoukhov, Light Bree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