發憤抒情

기영이 2.

*garden 2016. 3. 14. 19:23




농구를 마쳤을 때는 어둑해서 맞은편 아이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뒷정리를 하는 와중에 경기와 내일 일정과 미리 가는 애들 배웅으로 부산을 떨었다.
"헌데 여기 가방을 누가 가져갔노?"
"가져갈 사람이 어데 있다고 그러노?"
소지품을 모아둔 곳에서 내 책가방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갈라져 이리저리 들쑤셔도 종적이 묘연하다.
'혹시 안가져온 거 아이가?"
묻는 아이도 있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저만큼 교문을 나가는 아이들 가방을 확인해도 마찬가지. 가방이 있다면 찾아도 이미 찾았을 시간이다. 그중 누군가 긴가민가하면서 아까 기영이가 왔다간 얘기를 설핏 한다.
"그래? 갸는 도서관에 있겠제!"
별 수 없으므로 가보기로 했다. 파할 시간이어서 그런지 드문드문한 아이들 가운데서 기영이를 어렵지 않게 찾았다. 공부에 열중하고 있던 기영이가 반색했다. 그리고 옆에는 그렇게 찾던 내 가방이 턱 놓여있지 않은가.
"야야! 가방을 가져오믄 말을 해야제, 그것도 모르고 애들하고 애타게 찾았잖아!"
"당연히 니 가방이니 가져왔제. 그것보다 시험이 낼모렌데 우짤라고 책을 그래 안보노?"
이건 또 뭔 얘긴가. 배려인지 간섭인지 알 수 없는 일이 종종 생긴다. 벽을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답답해지는 때가 더러 있다.
"그래도 그렇제. 집에 가지도 못하고 엉뚱한 데서 가방을 찾는다고 다들 헤맸잖아!"
작심하고 몰아치고 싶어도 생뚱맞은 얘기를 늘어놓는데 어떡하나. 사실 요즘 농구나 축구, 철봉 등 운동에 열중해서인지 덩달아 성적이 떨어졌다. 당연히 해야 하는 공부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이다. 화가 치밀어 표정이 일그러진다. 걔도 눈치챘다. 그래도 모른 체한다. 그게 밉다. 정작 사과할 일은 언급 없이 전혀 다른 화제로 나를 쫓는다.
"니란 애는!"
한마디 쏘아붙일려다가 눌러 참았다. 아무 말 없이 책가방을 나꿔채고는 쫓아나왔다. 순식간에 커튼이 드리워진다. 서먹서먹한 감정이 우리 사이를 막았다. 늘 붙어다니던 우리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지나쳤다. 외면할수록 마음속 상대에 대한 존재감이 뚜렷하다. 분신 같은 존재라느니 가진 것을 기꺼이 내주고 싶다는 따뜻한 관계를 잊고 어느덧 소원해졌다. 한편으로는 배신감으로 몸을 떨었다. 이제 다시 안볼거야. 고집이 뿜은 거미줄이 얼기설기 덧쳐져 건너편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아무리 곱씹어도 자신에 대한 정당화만 당연시한다. 원수 같은 기영이에게 슬쩍 눈길을 준다. 보는 걸 눈치챘나 보다. 옆 얼굴이 굳어 있다. 그러면서 고개도 돌리지 않는 태도를 보며 나즈막히 욕을 내뱉었다.

그렇게 한 계절이 가고 또다른 계절이 되었다. 데면데면한 게 당연하다. 불편한 것은 다음 문제이고, 고질병에 걸린 것처럼 서로 외면했다.
개교기념일 행사로 열리는 이십킬로미터 교내 단축마라톤 날이다. 말이 하프이지, 우리에게는 죽을 맛이다. 하지만 전통 행사이니 빠질 수 없다. 무서운 체육선생이나 유도선생은 뒤에서 자전거를 타고 몽둥이로 쫓을 것이다. 학교 밖을 벗어나 크게 한바퀴 돌아오는 코스이므로 어떻게 할 수 없다. 화창하여 맑은 하늘 아래 일장 훈시를 들었다. 벌써 이마에는 땀이 삐질삐질 돋았다.
"벌써부텀 이래. 오늘 마이 덥네."
"하모, 다들 죽겠제."
도열한 다음 학년별로 함성을 지르며 출발하였다. 마라톤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워낙 등하교길이 멀다.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 비가 오나 눈 내리는 날이나 꼬박 걸어다녔다. 책가방이라도 가벼워야지. 은연중 그렇게 단련 되었는지 해마다 뛰는 마라톤이지만 결격 사항이 있을 수 없다. 일단 입상 대열에 들어가면 상도 대단했다. 이번에도 거뜬히 들어와야지. 오버하지 않으면서 힘을 분배하며 뛴다.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턱에 찬다. 해가 중천에 떠올라 열기를 뿜어댄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가끔 중간에 놓인 물도 되도록 절제하여 입술만 축인다. 중반을 넘어가면서 이제 나를 앞지르는 아이는 드물다. 대신 앞서가는 아이들을 하나라도 따라잡으려고 애를 썼다. 지나는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며 격려한다. 중간에 대기하던 선생들이 나를 보자 등수 안이라는 제스추어를 보낸다. 그것도 잠시 어느 순간 혼자 뿐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가쁜 숨과 고된 길만 끝없이 이어진다. 흙먼지가 이는 길가에 주저앉아 있는 아이들이 제법 많다. 터질 듯 차올라 눈도 침침하게 만들던 숨이 가라앉으며 안정되었다. 다리쪽에 경련이 일지만 그 정도야 다스려야지. 속으로 구령을 붙이며 팔을 적게 흔들어 기계적인 움직임이 되게끔 한다. 어릴 적 버스를 놓치고 주구장창 걷던 시골길을 떠올렸다. 그때야말로 얼마나 힘들었나. 그 먼길을 걷듯 오늘도 해보자. 이를 앙다물었다. 그리고 길 한쪽에서 휘청거리는 기영이를 보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하다. 다가가 어깨를 살짝 쳤다.
"뛰어, 아직 뛸 수 있잖아!"
기영이가 가녀린 눈을 들었다. 나를 보며 흐느적거리던 다리를 가다듬었다. 숨을 고쳐 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억지로 보조를 맞추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런 기영이에게 내가 보폭을 맞추었다.
"이러다가 니도 낙오하겠다 아이가."
"하라면 하라지, 그래도 같이 뛰자."
쨍쨍 내리쬐는 햇살에 미간을 찌푸렸다. 오랜 시간 짓누르던 속박감이 조금씩 풀린다. 발을 맞추며 '하낫둘, 하낫둘'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를 욱죄던 굴레가 눈 녹듯 사라졌다. 기영이도 따라 소리내며 눈물을 글썽였다. 눈물인지 땀인지 범벅된 얼굴을 훔치며 우리는 웃었다. 점차 빨리 뛰기 시작했다.

며칠 전 모임에서 연락이 왔다. 환송회로 마련한 술자리에 꼭 오라고. 거기서 인사하는 이가 있다. 여자아이인데 낯익은 사투리를 구사한다. 그걸 지적하자 '서울 온 지 수십년이 지났어도 바꿀 수 없는 게 말'이라며 겸연쩍게 웃는다.
"이름이 남자이름 같지예?"
되물으며 '기영'이라는데, 문득 기억을 더듬는다. 그러고보니 긴 손가락이나 하얀 피부 등 닮은 구석이 있다. 아련한 시절의 기영이를 떠올린다. 설마 어떻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혼잣말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David Sudaley, Appro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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