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여름, 그녀

*garden 2016. 8. 10. 21:51




"오늘 면접할 사람이 와 있는데요."
"아직 시각이 이르잖아요?"
"네, 그런데 와 있습니다."
"그럼, 봐야지요."
때로 밀린 업무는 혼을 빼놓는다. 출근하고서부터 정신 없이 쫓아다녔다. 의외로 추운 회의실. 에어컨은 가동되지만 여긴 사람이 드나들지 않아서이다.
"정다운입니다."
얼굴이 달아오른 채 다소곳이 앉아있던 아가씨가 벌떡 일어났다.
"오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여긴 춥네요. 창을 조금 열까요?"
긴장을 풀지 못한 표정이다. 보일듯 말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시원한 차를 갖다 놓았지만 무릎 위에서 깍지 낀 손가락을 풀지 않는다. 잊은 듯 나른한 매미 소리가 바깥에서 들어온다.
"덥지요. 우리 회사에 오신 적 있나요?"
"없습니다."
이것저것 말을 시켜도 대답 외 다른 말을 꺼내지 못한다.
"졸업한 지 꽤 되네요. 혹시 그 동안 하신 일이 있나요?"
마주 보면 어색할까 봐 자세를 비스듬히 바꿔 앉았다. 최대한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고 느낀 순간 고개를 숙인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단순한 한마디에 온갖 말이 회오리친다. 그러다가 감정이 북받혔는지 눈물을 보이는 그녀. 이력서를 수십 군데 냈지만 취업이 안되었다며.....기어드는 목소리가 안타깝다. 저마다의 일로 바쁜 식구들 얘기에 이르러선 눈물바다가 되었다.
"잘 알겠습니다. 검토한 다음 나중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이러면 안되는데."
"아닙니다. 때를 만나면 웃을 일도 많을 겁니다."
주섬주섬 서류를 챙기며 일어서자 무언가 안타까운 표정의 그녀. 그렇게 사람을 보내자, 담당 파트장이 쫓아온다.
"가급적 빨리 결원이 채워져야 합니다만."
"그렇다고 아무나 불러서 쓸 수는 없잖습니까? 결격 사유 없이 좋은 사람이긴 한데...."
여름 휴가가 막바지이다. 더구나 다음 달엔 이른 한가위 명절이 있어 쫓길 수 있다. 그래도 회사 결재라는 게 오직 까다로워야지. 더구나 인사문제는 여지가 없다. 사적인 감정을 아예 배제시켜야 한다.
"경험이 없어도 잘 가르치면 될까요! 이만한 사람도 더 없을 테니, 부를까요?"
"결정해 주시면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글쎄, 벌써 지하철 역에 갔을까나. 굳이 입사서류 때문에 나중에 부를 것 없이 오라고 하세요. 결재는 내가 받을게요."
돌아서서 채 오분이나 되었을까. 조금 전의 정다운씨가 들어왔다. 말을 건넬 수 없다. 면접을 진행할 때의 단정한 그 모습이 아니다.
실의에 차 터벅터벅 걸어갔다. 마악 지하철 계단에 발을 내딛은 순간 전화를 받았다. 파트장이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뻔하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돌아섰다.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이 한창이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다. 달려왔더니 비 오듯 땀이 쏟아져 화장이 지워진다. 숨이 목에 찬다. 곱게 웃으려고 해도 이상하게 되지 않는다. 까닭없이 눈물이 난다. 콧물이 흘러 맹맹하다, 더 이상 커질 수 없이 부풀어오른 해가 세상을 태울 것처럼 이글거렸다. 삼십오륙도 쯤이야 아무렇지 않게 오르내리는 기온. 열어둔 창 밖에 한줄기 바람이 일었다. 새삼스레 매미가 와글거렸다.

그 여름도 이만큼 더웠을거야. 꽃이 피었다간 사흘을 버티지 못한다. 길거리에 채 십분을 서 있을 수 없는 여름. 그래도 때가 되었다. 이젠 이 한철도 속절없이 보내야 한다.











Bebu Silvetti, After The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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