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발이 저리다. 잠결에 뻗다가 비명을 질렀다. 종아리에서부터 대퇴부쪽 근육이 당겨서는 다리를 펴거나 오므릴 수 없을 지경이다. 돌아누우면 나을까 했는데 이도 허사. 근육이 가닥가닥 말리는 기분이다. 아파 말로 다 할 수 없다. 눈을 떴다. 몇시나 되었을까. 텁텁한 기온과 캄캄한 바깥 어둠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다. 저만큼 갔으면 했는데 일어나기도 버겁다. 그저께 산길을 걸어서일까.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말야. 이런 병도 있다니, 이 통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젯밤 필요한 게 있어 대형마트에 들렀다. 매장을 둘러보다가는 깜짝 놀랐다. 바로 옆에서 조그만 아이가 막대풍선을 터뜨렸다. 굉음 때문에 나만 놀란 게 아니었다. 막상 터뜨린 풍선 조각을 든 아이 울상을 보자 어떤 말을 할 수도 없다. 필요한 걸 챙겨들고 계산대에 섰는데, 바로 앞에 아까 그 아이와 엄마가 서 있다. 아이 손에는 들린 다른 막대풍선이 눈에 거슬린다.
"너 조심해야 돼. 조금 전에도 풍선을 터뜨려 다들 놀랐잖아!"
엄마 말은 아랑곳없다. 어느새 바람 빠진 풍선이 할머니 뱃가죽 같다.
"풍선이 왜 이래요?"
만지막거리던 풍선이 아이 손에서 엄마에게 간다. 입술을 앙다문 여자가 길쭉한 손가락으로 고무를 늘이고 애쓴 끝에 막대풍선 가운뎃 부분을 불끈 묶었다. 비로소 몽실몽실해진 풍선. 아이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느낌이 생각난다. 부드러우면서도 팽팽한 감촉. 다시 아이가 풍선 한쪽을 꾸욱 눌렀다. 반대편이 볼록해지자 엄마가 아이 어깨를 치며 눈을 흘긴다. 부풀어오른 커다란 풍선을 타고 하늘 높이 오르는 꿈을 꾸기도 했다. 누군가 뾰족한 침으로 찌를까 봐 조바심도 낸다. 헌데 풍선을 선반에 고이 올려 두었다가 바람 빠져 심드렁해진 모습을 보면 더욱 실망스러웠다. 어릴 적 마음속에 풍선 하나쯤 슬쩍 품지 않았을까.
퇴근 후 쫓기면서 운동시각을 맞추곤 했다. 다들 나름대로의 시각을 정한 것이니 내가 쫓아가야 한다. 운동을 마치면 출출했다. 다행히 옆에서 붙잡는 동료가 있으면 선술집에서 한잔 걸치기도 한다. 그 다음이 문제다. 교통편이 마땅찮아 중간에 갈아타야 하는데 그게 귀찮다. 별수없이 집 가까운 곳에 내려 걸어가기도 한다. 야심한 밤도 정중히 맞으면 그럴 듯했다. 근방에 우후죽순처럼 생긴 마트가 블록별로 하나 이상씩 있었는데 그중 눈에 띄는 '삼촌네'에 들어간다. 마트주인이 산도적처럼 큰 덩치에 수염이 거뭇했는데 의외로 마음은 여려 깍듯했다.
"아니, 아버님. 춥지 않으세요?"
"수영을 하고 왔더니 괜찮네요."
"아버님,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내가 좋은 게 아니고 나를 보는 눈이 좋은 거지."
"아버님, 오늘은 자두가 좋습니다. 제가 먹고 싶을 정도예요."
"그럼 하나씩 먹어 봅시다."
아닌 게 아니라 한입 깨물자 질펀한 여름이 입 안 가득 들어온다. 새콤하면서 배어나는 단맛이 일품이다. 이건 단맛이 껍질에 묻어나와 하얗게 서려 있을 정도이다. 제철과일이어도 생명이 짧은 자두. 예전 짝이던 계집애 이름이 뭐였더라. 고게 말야. 어느 날 아침 내 책상에 주먹만한 걸 한 알 넣어 두지 않았던가.
어느 늦은 밤, 삼촌네마트 불이 꺼져 있다. 집안일이 있는 겐가. 그래도 그렇지. 곳곳에 생기는 게 마트 뿐인데, 이렇게 문을 안열면 어떡해. 그게 그 다음 날도 다음 날도 불이 켜지지 않는다. 가슴 속 심심할 적마다 주물러대던 풍선이 '뻥!'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