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잊는다는 것, 잊힌다는 것

*garden 2016. 8. 31. 00:01




업무 중 걸려온 전화. 얼른 용건을 마치고 하던 일을 마쳐야 하는데 상대는 끈질기다. 일을 미루고 상대하는 중에 호출을 받았다. 겨우 매조지고 쫓아가는데 출입문에 아는 이가 기웃거린다. 두세 가지 일을 내색하지 않고 해치우는 게 아무렇지 않았는데 인제 벅차다.
"식사하러 갑시다."
"엉, 벌써?"
"열두시를 넘긴 지도 한참입니다."
때가 되면 먹어야 하는 것도 성가시다. 그렇다고 습관을 포기할 수도 없고. 일행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쫓아가 식당을 기웃거리다가 망설였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곤란하다. 어른들이 앉거나 일어서며 '어구, 어구!' 하며 소리내는 걸 예사로 지나쳤는데 비로소 이해된다. 서너 주가 지났다. 허리 통증이 가시지 않아 자리잡고 앉거나 앉은 자리에서 일어날 때면 식은땀을 흘렸다. 지하철 좌석에 똑바로 앉아있기도 어려워 몇 정거장을 버티지 못했다. 저번에는 한나절 운전하는 중에도 애먹었다. 욱신대는 통증이 엉덩이쪽에서 시도때도 없이 등골을 타고 오른다. 고민을 갖고 다니는 편이 아닌데, '이러다가 잘 못되면 어쩌지?' 싶은 기우에 쓴웃음을 지었다. 불안한 자세 탓인지 움직임도 어설프다. 길거리에서 주머니 손전화를 꺼내는데, 지나는 이가 툭! 치고 간다. '아차!' 하는 순간 놓친 전화기. 부리나케 집어들었건만 소용 없다. 충격으로 액정 귀퉁이에서 시작한 금이 방사형으로 퍼져있다. 다행히 햅틱은 먹혀 작동이야 되지만 유리벽 같은 마음도 천갈래 만갈래 금이 갔다. 평소엔 울리지도 않아 아무렇지 않던 전화기가 탈나자 불이 난듯 바쁘다. 화면을 볼 때마다 속상하다. 염천 더위가 웬간해야지. 땀 흘리며 쫓아다니다가 불현듯 전화기를 맡겼다. 얼마 전에 아이도 전화기 액정이 나가 수리를 했다. 헌데 단순 수리가 어려운지 전화기를 바꾸고 유심칩을 갈아넣었다. 비용도 만만찮지만 며칠 동안 전화기 없이 지내는 걸 보자 아뜩하다. 대개의 업무가 전화기로 이루어지니 큰일이다. 임대폰도 여유분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며 겁을 주더니 그게 남아 있는 게 다행이란다. 이번에는 대체한 아이폰이 구형이어서 질이 떨어진다. 난데없이 전화한 상대는 목소리가 왜 이리 울리냐는 등 음성이 맑지 못하다는데 변명을 늘어놓을 수 없다. 한 주일 걸린다던 액정 교체가 닷새 만에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말끔하게 바뀐 전화기는 새것 같아서 저으기 흡족한데, 그 다음이 문제다. 당연히 백업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집 컴퓨터는 물론 갖고 있는 노트북으로도 해결할 수 없어 씨름했다. 수리중 초기화되어 버린 전화기는 무용지물이다. 이래서야 원, 한탄이 절로 난다. 예전엔 수첩 등에 전화번호 등을 촘촘히 적어 두기라도 했는데, 어느 순간 그럴 일도 없어 넘어갔는데, 그걸 기억하기는 커녕 되살릴 방도가 없다. 오죽하면 주변 식구들 전화번호마저 몰라서 쩔쩔 맬까.

여름 내 거르지 않고 달라붙어 끈적대는 열대야로 지친 몸뚱이. 몽롱한 가운데 의욕마저 사그라들어 무기력한 나날. 막다른 골목에 내팽개쳐진 사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밤새 끙끙대다가 새벽녘 간신히 잠들었다. 새우처럼 말린 등을 펴며 조심스레 돌아누웠다. 알 수 없는 길을 돌아온듯 지난 시간이 가뭇하다. 번호이동 등으로 오래 사용하던 전화번호가 온통 바뀌었다. 그나마 남겨둔 전화번호들을 모조리 날렸다. 삭제된 기억을 복원할 수 있어야지. 그야말로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떨어진 너와 내가 실감난다. 바람이 일렁이는 기척을 들으며 눈을 떴다. 어젯밤 늦은 시각에도 왕성하던 매미소리가 순식간에 들리지 않았다. 대신 벽 틈에서 숨죽인 가을 벌레소리가 조금씩 새나왔다.










김현성, 나무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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