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봄 여름 내 찾은 북한산. 이제 가을 물이 들 참이다. 부지불식간에 뚝 떨어진 기온. 반팔차림으로 나서다가 '엇차!' 한다. 지난 여름 무더위가 엔간했어야지. 간밤에 비 내리고 바람 불었지. 언뜻 본 아침 기온 9도라는 게 실감나지 않아 무심코 지나쳤다가는 바깥 공기에 맨살을 내놓고서야 놀라 쫓아 들어왔다. 부랴부랴 옷도 다시 챙기고 차림도 때에 맞추지만 실상 여름 습관을 떨치지 못했다. 들머리를 바윗길로 잡아 부담스럽다. 해가 떠오르자 조금씩 따끈따끈해지는 바위. 오래 신어 닳은 신발 바닥과 지난 번 부러뜨린 발목 뼈도 염려스럽다. 조심스레 바위를 딛고 서서 엄지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바람 소리와 저 멀리서 들리는 사람들 소리가 아득하다. 눈앞에 우뚝한 하얀 화강암 바위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끝도 없이 솟아 하늘을 찌르는 바위들의 우람함. 거칠고도 단단하여 바닥을 떠받히는 감촉을 즐겼다. 발목을 접고 몸의 균형을 잡다가 비틀거렸다. 자세를 낮추며 더듬어 홀더를 찾았다. 우리가 직립으로 걷는다는 건 기적이라지 않는가. 조심스레 떼는 걸음. 점차 익숙해지며 빨라진다. 우쭐거림이 살아났다. 차츰 나아가는 중에 어깨를 흔들어 춤을 추듯 덩실거렸다. 내가 부대낀 곳이 어디였던가. 자고나면 덩치를 키우는 도시. 사람들 아우성은 아랑곳없이 저 혼자 오연하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현실 도피라도 하듯 북한산 자락을 쫓아다녔다. 스파이더맨처럼 바위에 달라붙어 꼬물거리기도 하고, 등성이에서 헐떡이며 초록 나무들과 둥둥 떠다닌 하루가 어찌보면 꿈만 같다. 살아있어서 느끼는 행복에 이 만한 게 어디 있을까. 또 한 번의 가을이 하늘부터 휘저은 다음 땅으로 나붓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