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덩이가 작다지만 다녀보면 그렇지도 않다. 한나절을 줄기차게 달려 닿은 강진만. 도암쪽에서 보는 마량은 하얀 빛깔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있어 으리으리하다.
"끼니라도 떼우려면 저기로 가야 하지 않을까?"
"넘어갔다가 어둡기 전 돌아오기에는 벅찰텐데....."
"이런 막막한 데보다야 낫지. 고금대교도 구경할 겸 마량으로 가지."
"예까지 오는 일도 예사가 아니었으니 쉬엄쉬엄 움직이면 안될까?"
남도쪽을 돌아보고 산이라도 오를 겸 떠난 길이다. 함께한 친구와 길을 의논하는 동안 여자들은 어느새 언덕배기에 주저앉아 있다.
"거기서 뭐해?"
"여게 가을 고들빼기가 제법 실하네요."
아침을 먹으면 점심 땟거리 걱정. 점심을 끝내고 나면 또 저녁 땟거리 마련이 습관 든 사람들. 어딜 어떻게 가더라도 그게 의무인양 지우지 못한다. 한가한 오후 햇살이 강진만 물결에 비늘로 떠 반짝인다. 짭조롬하고 비릿한 바닷바람이 간간히 불었다. 아직 이른가. 카메라를 꺼냈지만 겨울 진객인 고니 대신 백로만 드문드문 보였다.
그리고
몇 해 지나 영암 월출산에 올랐다. 저희끼리 몸을 부벼 서걱이는 대숲길을 지나자 시작되는 울퉁불퉁한 바윗길이 만만치 않다. 그게 마땅한 의무인양 바위를 건너뛰거나 비켜다니며 헤맨다. 한편으로는 배낭 끈을 당기며 바삐 걸음을 떼었다. 다행히도 어느 때와 비길 수 없을 정도로 몸상태가 좋은 느낌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등성이가 마치 지난 삶을 닮았다. 여기는 어느 때 지각이 흔들릴 때 바닷바람에 떠밀려 산이 되지 않았을까. 드센 바람에 버텨 더 이상 밀리지 않겠다며 등돌린 땅.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를 덜컥 엎어 놓은 것 같은 산. 오늘은 한겨울을 떠올릴 정도로 춥다. 소슬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건너편 바위 투성이 산마루를 눈으로 가늠한다. 저만큼이면 보이지 않을까. 숨가쁘게 산을 오르는 내내 강진만 바다를 떠올렸다. 때마침 산 중턱에 달이라도 걸린다면 그야말로 이름에 걸맞을텐데. 어렴풋이 바다가 떠올랐다. 그때처럼 아직 고니도 찾아오지 않았겠지만 잔잔한 물결이 눈에 선하다. 사랑이 늦가을 고들빼기로 기억되다니. 천황봉에서 굽어보는 열린 세상. 우리가 금을 그었지. 남해와 서해가 어우러져 보인다. 오후 햇살이 서글프게 느껴지는 십일월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