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두 발로 우뚝서는 십일월

*garden 2016. 11. 7. 19:39




어느 때 발목뼈가 부러졌다. 뼈를 잇고 기다리는 동안 의구심이 생긴다. 다시 '바로 설 수 있을까'에 대하여. 몸을 세우는 일이 만만치 않다. 발이 있는데 감각이 없다니. 단지 절굿공이처럼 둥근 뼈 끝으로 바닥을 짚고 있는 기분이다. 이런 상태로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감이 교차한다. 헌데 오늘이야말로 그 시험대이다. 아무렇지 않다가도 불쑥 이는 통증. 트라우마 탓인지 식은땀을 흘렸다.
장수대분소에서 짐을 챙기고 일어섰다. 이틀 산행을 계획했더니 여느 때보다 묵직한 배낭으로 어깨가 짓눌렸다. 바람이 뺨을 간지럽힌다.
"이 만하면 산행하기 좋겠는 걸."
"저 위가 어떨지 모르겠어요. 강풍주의보가 있던데...."
새벽 세시 넘어 시작한 산행은 캄캄한 대승폭포를 지나친 다음 서북능선 귀청 아래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벌써 겨울 날 채비를 하는 나무들. 앙상한 가지 사이 숨은 소롯길을 헤드랜턴 불빛으로 더듬는다. 겨우 어른 한팔 너비 만큼 되는 길이 백척간두로 이어진다. 이 길이 그야말로 백두산까지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똑바로 걷기. 무게중심 바로잡기. 균형을 잃지 않고 걷기. 암릉이나 돌을 밟을 때 주의하기 등을 주문 외듯 중얼거린다. 차츰 바람이 다르다. 이마에서 돋은 뜨거운 땀이 뺨으로 흐르는 동안 싸늘하게 식었다. 한자리에 머물지 못하는 바람. 파도처럼 허공을 휘젓다가 어느덧 우레로 '으르릉'대기도 한다. 골짜기로 내려가도 걱정, 등성이로 올라서도 걱정스럽다. 이래저래 걱정 투성이라니. 어쩌면 이 산행으로 나는 작금의 주변 형국을 바꾸고 싶은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끊임없이 고도를 높이며 걷는 길은 고통스럽다. 헌데 이상하다. 호승심 때문인지 일행 중 아무도 쉬자는 말이 없다. 가만, '이 참에 기록이라도 세워 만인 앞에 떠들어볼까' 하는 심산인지. 쉴새없이 생각뿌리를 들추었다. 지난 일과 걸어온 길과 기억나는 책 구절을 되뇌이다가 아는 이들의 이름을 주절주절 불러보았다. 는개비처럼 내린 운무가 지났다가 사방이 뿌옇게 흐려지기도 한다. 드디어 너덜바위로 가득한 귀청 아래 섰다. 여기 올 때마다 가지는 의문 하나. '대체 이 많은 암석을 이곳에 누가 부렸을까' 하는 것이다. 덤프 트럭에 싣기에는 너무 큰 바위들, 그것도 수억 톤은 됨직한 암석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다. 세찬 바람이 어둠을 걷어도 시야는 열리지 않았다. 바위 틈새로 밤 사이 내린 하얀 눈도 보이고, 용골을 지난듯 무시무시한 광풍이 허공을 휘저어 몸을 건사하기 힘들다. 바위에서 바위로 건너뛰기 위해 발을 떼다가는 바람에 후려쳐져 휘청거렸다. 허긴 초속 십이미터 정도라니 태풍 수준이야. 괜히 일행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기도 하면서 귀청 너덜지대를 지난다. 드문드문 맞은편에서 오는 이들이 입을 조물거린다. 소리가 들려야지. 알고 보니, '이런 바람 처음이라'면서 조심하기를 당부한다. 운무가 내려 구름 위에 선듯 발목이 잠기기도 한다. 신선 흉내를 내기에는 황량한 지대. 생기라고는 없는 곳. 바람만이 광기를 부리는 세상. 오직 나만 존재하는 듯 발 끝을 세우고, 바위에서 바위로 건너뛰면서 또 다른 발을 올려 놓을 뾰족한 바위 모서리를 찾아 눈을 부릅뜨고 두리번거렸다.












Yanni, Before I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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