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오서오서가다오서 오서산

*garden 2016. 11. 29. 01:45





오직 사랑만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여기던 시절. 정작 하지 못하는 사랑 때문에 애를 끓었다. 눈만 뜨면 긴가민가한 너의 모습. 손 내밀어도 잡히지 않고 웃음만 짓는다. 그렇게 견디다가는 미칠 것만 같아서 길 끝자락에 죄다 던지고 버리고 깔아뭉개고 오겠다며 떠난 적 있다. 오른편 등에 이고 있던 해가 나를 타넘어 심장 앞으로 쭈우욱 쫓아나가 기울 때까지 줄기차게 걸었다. 산허리를 크게 돈 다음 으쓱한 억새밭에 소줏병과 함께 나딩굴어 세상 끝을 확인도 못하고 한참 울었다. 부빌 때마다 까끌한 검불 더미에 긁힌 눈자위가 아프다. 풀어 헤뜨려진 바람과 미친듯 일렁이던 억새 탓이지. 내 절망은 온데간데 없이 사그라져 버렸는데, 한참 지나고서야 그때를 떠올렸다. '왜 그렇게 철이 없었던가' 싶어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면서.....

이맘때의 드센 맞바람. 고지대일수록 기승을 부려 그나마 남아 있던 나뭇잎도 남김없이 떨어뜨렸다. 그렇게 이바지하다 가는 게 운명이려니 여긴다. 마침내 민둥머리 산정에 올라 바재이다가 울컥하는 막막함. 가을 초병처럼 줄지어서 세운 꽃대에서 폭죽처럼 터뜨려져 갈채를 보내는 억새 군락. 저만큼 새떼가 날아올라 허공에서 커다랗게 원을 그리고 사라졌다. 다붓한 거기 어른거리는 너라니. 잊은 줄 알았는데. 가까이 오기는커녕 에멜무지로 웃기만 하는 초롱한 그 눈망울이 아찔하다. 눈을 감았다. 칼칼하니 기도에 결이 지는 듯한 계절. 어디서 풍경소리가 나는 걸까. 별안간 바람이 멈추었다. 아무렴 어때. 어리석은 청춘의 한때처럼 사랑 따위로 속 썩진 않아. 스스로를 다독일 때 너의 입술이 뺨에 닿았다. 홀림길에 선 가을이 기울 적에.








Ludovico Einaudi, Le 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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