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이 넘쳐흐르던 땅 위를 공룡은 어떻게 걸었을까. 덩치가 커 발바닥에 닿은 열기를 머리에서 알아차리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그때 찍힌 발자국이 흔적으로 남았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공룡의 살이나 종류, 행태 등을 이로 어렴풋이 유추해낸다.
동짓달 어머니는 팥죽을 끓여 꼭 두어 그릇을 웃목에 놓아 둔다. 지신에게 고하려는 거다. 이튿날, 팥죽 표면이 딱딱하게 굳어있다. 숟가락으로 조심스레 걷어내면 비로소 먹음직스러운 하얀 새알이 든 보랏빛 죽이 드러나곤 했는데, 주어지면 감지덕지 먹었다.
그저께 오후 외곽순환도로를 달리며 본 북한산이 환상적이다. 날뫼에 하얀 눈이 덮혀 알프스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 은근히 기대했는데, 오늘은 상온으로 흔적 없다. 허나 오를수록 응달 눈이 녹지 않아 미끈거린다. 땀을 훔치며 한발 한발 조심스레 내딛었다. 의외로 찬 골바람이 몰아치기도 한다. 그래도 저만큼 느낄 수 있는 봄. 애기봉을 돌아 부암동암문으로 내려오는 길이 질척댄다. 얼어붙은 대지가 풀리는 시점. 밟은 땅이 얼어 있다. 허나 물컹한 흙 위를 보드처럼 떠돌아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 팔을 벌리고 균형을 잡으며 움찔거린다. 모름지기 봄맞이 춤사위이니 더욱 신명나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 신발에 진흙을 설피처럼 두르고는 소리쳤다.
"햐, 땅거죽이 팥죽 같아!"
꽝꽝 언 계곡 얼음이 풀렸다. 말간 물에 유영하는 버들치 그림자가 보인다. 한겨울 냉랭한 얼음장 아래서 어떻게 견뎠을까. 팥죽 속처럼 묽게 남아 있으려면 혼자 삭이기. 까무룩 잦아들기, 행동 반경을 줄여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기 등 할 수 있는 걸 모두 행했을거야. 척박한 환경에서도 애기봉 암릉 위 소나무는 바람 속에서 더욱 푸르렀다. 그대도 그랬는가. 마음속 꼬물거리며 오르는 생기를 꽃으로 피워야 하는 시기. 우리는 북풍 속 매서운 겨울을 견디며 그렇게 무언가를 키우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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