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조카 유진이를 볼 때마다 감탄하는 동네 아주머니들.
"어머, 유진아. 너는 어쩜 그렇게 공부를 잘하니?"
바르게 잘 자란 아이. 속썩이는 법이 없다. 제 엄마아빠가 잔소리 한번 안해도 밥 먹듯 장학금을 타오고, 유수의 대학에도 떠억 들어갔다. 남들은 머리를 싸매고 해도 안된다는 공부가 별것 아닌 듯 여겨지는 유진이. 졸업하기 전 이름난 법률회사에 취직도 되었다. 이제 자기 갈 길을 걷도록 놔두면 될텐데, 그래도 주변에선 마음 놓을 수 없다는 듯 간섭을 그치지 않는다.
"얘, 빨리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 가야 할텐데."
이러쿵저러쿵 좇아도 생글생글 웃기만 하는 유진이. 어른들은 왜 삶이 힘들다고 끙끙댈까. 걱정한다고 잘 될건가. 어떤 방식으로든 앞으로 굴러가는 건 마찬가지. 유진이에게 공부는 취미이고 놀이이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달란트는 요즘 말로 탤런트이다. 옛날 의상과 원효는 오직 깨달음을 위하여 힘든 기색 없이 전국의 명산 각지에 발자국을 새겨 놓았다. 김정호는 온갖 고난에도 불구하고 단지 두 발로 재어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각자에게 부여된 달란트가 다르듯이 우리에게는 산행이 놀이이고 취미이다. 내내 산을 그리고 산을 떠올리며 시간이 나면 줄기차게 달려간다. 오늘도 한달음에 달려가 만난 조령산.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에 걸쳐져 있는 천여미터 고봉을 아무렇지 않게 올랐다. 이곳 바위는 즐겨 오르는 북한산과 다르지 않아 익숙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실핏줄처럼 퍼진 나목, 내려다보면 응달 눈밭에 펼쳐진 나뭇가지들에 물이 오른다. 조만간 봄이 온다는 것을 누가 의심할까. 산정으로 통하는 길목. 얼마 전 쳐놓은 테크에 고목이 가로질러져 길을 막았다. 저 부러진 둥치에서 뿌리가 돋고 새닢이 날 때쯤 다시 한번 찾아올 수 있으려나. 절골을 들머리로 신선암봉에서 건너편 부봉과 주흘산 등을 황홀하게 더듬어본다. 조령산 정상을 거쳐 위태위태한 하늘 길, 외줄 같은 암릉을 밟고 원점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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