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활짝 핀 나무 아래 모인 한떼의 여자들. 우중충한 겨울을 어떻게 견뎠을까. 기다렸다는 듯 너도나도 하늘하늘한 차림이다. 일행 중 누군가 우스운 이야기를 꺼냈는지 일제히 목청 높여 깔깔거리는데, 봄이 온통 그녀들 차지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흔들리는 소담스런 꽃뭉치. 세상을 밝히는 꽃불이다. 저만큼 그늘에서 진작 꽃 피운 하얀 목련은 어느새 꽃잎을 떨어뜨린다. 헌데 강촌엘리시안으로 들어서자 담장을 높인 키다리 아저씨네처럼 봄이 흔적도 없다. 지난 겨울 슬로프를 뒤덮었던 눈더미가 산기슭을 따라 여지껏 남아 있는데, 그나마 스키 타던 곳을 퍼블릭코스로 만들어 근질근질한 갤러리들을 불러냈지만 오르막 방향으로 공을 친들 얼마나 날아갈까. 혹여 안착시킨들 비탈에서 공이 굴러내리면 아찔할게다. 지나온 북한강변을 따라 줄줄이 늘어져 있던 꽃이 여긴 감감무소식이다. 봄앓이 때문인지 사흘째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기어이 그제는 꼬박 뜬 눈으로 새웠더니 술 한잔으로 그대로 떨어졌다. 덕분에 아침 일찍 깨어 개운한 기분으로 주변을 돌아본다. 웅크리고 버틴 꽃나무들이 눈물겹다. 어제 강촌 역장은 혀를 찼다.
"서울도 이렇지 않은데 왜 여기 미세먼지가 많이 떠돌아다니는지 염려스럽습니다."
오늘은 맑다. 자욱하던 미세먼지가 말끔히 걷힌 하늘. 부드러운 햇살과 따뜻한 기운이 조금씩 퍼진다. 검봉 오르는 길에 만난 응달 생강나무는 겨자색이어서 별로였는데, 사진으로 보자 오히려 낫다. 누가 뭐라든 진군중인 봄. 등성이마다 부시시 깨어난 진달래 꽃등에 조심스레 불이 켜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