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 못해도 절망하지 않는다
혼자면 어때
이 생이 끝나면 당신 생이 이어지리니
그렇게 살고
또 한 세상 살면 좋지 않을까
티브이가 없던 '60년대. 진공관을 쓰는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보물이었다. 라디오에서 연속극을 방송하는 시간에는 어머니가 거기 매달려 있다. 연인 사이의 남녀가 만날 듯 엇갈리는 대목에서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쉰다. 만나기로 약속한 자리에서 간발의 차로 지나치면 당신은 두 손 깍지끼고 입을 조그맣게 오므렸다.
봄철 비늘줄기 끝에 잎이 나는 '상사화'. 잎은 꽃줄기가 올라오기 전 사그라든다. 꽃 필 무렵이면 아예 볼 수 없다. 열매는 맺지 못한다. '개가재무릇'이라고도 한다. 잎이 있을 때 꽃이 없고, 꽃 필 때 잎이 없다. 잎은 꽃을 떠올리고, 꽃은 잎을 그릴까. 사람들이 '상사화'라 불렀다. 아침마다 지나는 길에 상사화가 환하다. 다음 날 카메라를 챙겼다. 작정하고 나갔더니 아뿔싸, 누가 짓밟아 놓았을까. 쓰러진 꽃대가 참혹하다. 욕지거리를 뱉을 뻔했다. 지나고서야 짐작한다. 간밤 휘젓던 억센 비와 바람 때문일거야.
궁금한 점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매달려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눈부신햇살'님. 이런 분이 주변에 있으면 은연중 오류가 바로잡힌다. 지적하신 대로 위는 상사화 품종 중 '백양꽃'으로 우리 나라 특산종이다. 백양사 절 주변 계곡에서 처음 발견되어 이름 지어졌다. 다른 상사화와 달리 열매를 맺는다. 꽃대 오른 자리에 지천인 잎은 맥문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