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然索引

산솜다리

*garden 2017. 6. 2. 07:33





출석부는 한자(漢字)로 씌어진다. 한자를 잘 못 읽어 틀린 이름으로 부르면 아이들이 웃었다. 이름이 한 글자만 틀려도 왜 그리 이상할까. 더러 알면서도 놀리느라 틀리게 부르는 경우도 있다. '차찬'이 이름은 원래 '또 차(且)' 자를 쓰다보니 'ㅊ'이 겹쳐져 발음이 애매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국어 선생은 일부러 차찬이를 또찬이라고 불렀다. 나중 아이들은 졸업하고서도 '차찬'이 이름이 '도찬'인 줄 알고 있었다. '축자'도 마찬가지이다. '숙자'로 알았는데, '축자'라니 이름이 모호하다. 그 집안 어른들은 왜 아이에게 이상한 이름자를 붙였을까. 방과 후 동무들과 어울려 지치도록 놀다가 헤어졌는데, 함께 놀던 녀석들이 잡아끈다. 저만큼 가는 축자 집에 따라가 보자면서. 킬킬대며 무리지어 따라가는 우리를 축자도 알았다. 걸음을 멈추고서 난처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나무라듯 손짓을 하지만 어림없다. 가다가 서고 섰다가 가는 놀리는 행동이 되풀이된다.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난리가 났다. 축자를 따라갔던 아이들이 이른 아침 불려가서 모두 혼났다는데.
"너도 어제 축자 따라갔다면서?"
아이들이 나를 보며 걱정스런 표정이다. 수업 전 들어오신 선생님은 내 얼굴을 지나쳤지만 별다른 내색을 보이지 않는다. 아오, 종일 마음을 졸여 하루가 일년처럼 길기만 하다. 헌데 그냥 넘어갔다.
며칠 뒤 축자와 당번이 되었다. 아이들과 있을 때엔 눈치를 안봐도 되었는데, 끝까지 남았다가 함께 나가게 되자 꺼림칙하다. 지은 죄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얘가 저번 일을 들춰 나무라면 어떡하지? 차라리 먼저 사과해야겠지. 염려스러운 나와는 달리 스스럼없이 내 뒤에서 따라오는 아이를 돌아본다. 가냘픈 체구에 바짝 잘라 어울리지 않는 단발머리가 어색하다. 멈추고 섰다. 축자도 갑자기 서는 바람에 단발머리가 나풀거렸다.
"그게 말인데.....?"
"응? "
"아이들하고 너 따라간 것 말야."
"선생님께 이를 때 너 이름은 말 안했어."
"그래?"
의외다.
"그리고 이것, 우리 삼촌이 설악산 갔다가 가져왔는데....."
까만 종이에 압화로 비닐에 씌어져 있는 에델바이스를 받았다.

몇년 뒤 축자를 만났다. 나는 시오 리나 떨어진 학교에서 돌아오는 중이었고, 걔도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엇갈릴 수도 있었는데 딱 만난 게 용했다. 키가 부쩍 자라 구부정하다. 책상 서랍에 넣어 둔 압화를 떠올렸다. 꼭 에델바이스 같잖아. 놀랍다. 예전처럼 어색한 단발머리에 핀을 꽂고 있다. 솜다리 꽃잎처럼 핼쑥한 얼굴에 번지는 웃음. 오후 햇살이 아이 얼굴에 머물렀다. 내가 멋적어 머리를 긁적거렸다.








산솜다리는
우리나라 특산물로 금강산과 한라산에만 드문드문 개체를 확인할 수 있다.
안타깝지만 현재 국내에는 서식지가 거의 없다.
사진에서 산솜다리 왼쪽 사초는 잎뿐인 난장이붓꽃, 그 아래 사진 오른쪽 잎은 산오이풀이다.


Bernward Koch, Short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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