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게 벋은 큰키나무 아래 서 있었다. 든든한 나무에 등을 기대자 들린다, 오래된 이야기들이. 주렁주렁 내리는 맑은 햇살. 푸르름도 함께 내린다. 한두 사람씩 모여들어 시끌벅쩍해졌다.
"이제 가시지요."
누군가 호기롭게 소리를 낸다.
"아직 오지 않은 분이 많아요. 조금만 기다립시다."
"그래요?"
"아, 저기들 보이네요."
"어서들 오세요."
"죄송합니다. 걸음이 늦었네요."
그 중 한 사람이 고개로 앞 일행을 가리킨다. 혀를 차며 머리를 설레설레 젓는다.
연세 드신 분들이 잔뜩 지나간 참이다. 가파른 바윗길이 이어진다. 오르막에서 짚는 스틱이 자꾸 뒤로 삐져나온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참다 못해 그걸 짚었다.
"저, 어르신네. 스틱이 위험해요."
돌아보는 눈빛이 만만찮다. 억장이 무너지듯한 목소리
"빨리 가고 싶으믄 가. 왜 말을 돌려?"
다분히 역정이 서려있다. 멋적게 앞서는 일행 뒤에서 말이 섞인다.
"돼먹지도 않은 것들이....."
안봐도 뻔하다. 사람들로 뒤엉킨 산길. 너도나도 마지막 가을을 즐기려고 한다. 와중에 소란이 그치지 않았다. 앞가슴이 경직되면서 움츠러든 어깨. 자라목. 휜 등뼈. 지난 가을 초가지붕처럼 늘어진 눈썹. 움푹한 눈자위. 자글자글한 눈두덩의 주름. 걸음은 침착하지만 가라앉아 있다. 금방이라도 땅 속으로 꺼질 것처럼. 남은 시간이 유유자적하면 좋을텐데. 나무를 닮지 못하는 우리가 안타깝다.
"멀찍이 떨어져 가도 시간이 넉넉하네요. 천천히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