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모였다. 안부만 주고받다가 답답한 누군가 이쪽저쪽 연결하여 마련된 자리이다. 어려운 자리인 걸 태무심했나 보다. 약속 시각쯤에야 닿았다. 진작 좌정해 있는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다. 잡은 손이 부담스럽지 않게 해야지.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끔 한다. 잠깐씩 의도적인 눈길을 둔다. 적당히 배분된 좌석. 격리된 방이어서 필요 없게 된 테이블을 치워두고 컵이라든지 술잔 등을 별도로 올려 두었다. 도착하기 전부터 오늘 어른을 엇비슷하게 보이도록 귀퉁이쪽 자리가 안배되어 있다. 누군가 나를 아는 이가 설정해 놓았을게다. 마침 주문을 받으러 왔으므로 반주부터 시켰다. 엇갈려가며 안부를 주고받는다. 담론 중에 요리가 나왔다. 성정이 활달한 이가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술을 배달시키면서 은근히 자기를 과시하기도 한다. 답례로 또 다른 이가 다시 술잔을 돌렸다. 함박웃음이 터뜨려지고 제법 흥이 올랐다. 한 시간이 훌쩍 넘자 볼일을 보기 위해 들락날락하는 이들이 있다. 내 옆 귀퉁이에 앉은 이도 망설였겠지. 양해를 구한 다음 조심스레 뒤편을 돌아 나갔다. 그게 두 번째가 되자 조금 과감해진다.
"안가세요?"
"아, 다녀오세요."
두세 시간 술자리가 지속되어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예의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가는 이를 탓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사정이 다르므로. 나야말로 누가 뭐라든 내 루틴에 충실하고 내 상태를 거기 적합하게 맞히려고 애쓴다. 사람이 모여도 가급적 치우친 자리에 앉는다. 그러다보니 뒷자리를 즐겨 찾는다. 이는 계급이나 차별성을 앞세우는 우리 사회에 대한 근본적 반감이 있어서일까. 자리에 대한 애착이야말로 누구라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내게 정해진 열차 좌석을 바꿔달라는 이도 있었다. 무심코 그러라고 하며 앉았는데, 하필이면 화장실과 맞닿은 맨 앞쪽 자리이다. 보아하니 그쪽 옆자리 사람이 일행도 아니다. 속좁은 기미를 보이기 싫지만 멀뚱하니 있을수록 괘씸하기 짝이 없다. 뒤쪽으로 갈 일은 없다. 쏜살같이 내닫는 열차에서 괜히 일어서서 나갔다 오는 길에 원래 내 자리를 건너다 보았다. 전혀 아랑곳없이 딴전 피며 눈길을 엉뚱한 곳에 두고 여행하는 저 여자 심보는 대체 어떤 걸까. 영화관이나 지하철에서도 자기 편의대로 자리를 바꿔달라는 이가 있다. 마땅한 이유를 알아볼 것도 없이 무시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거나 사람들과 모이면 슬금슬금 뒤쪽으로 옮기는 게 스스로의 사회문화적 관습이 되었다. 어쩌면 무작위적 시선에서 일단 벗어나려는 방어기제 때문일게다. 구석자리에서 비로소 방기된 자아통제로 보면 사람들 행태가 한눈에 들어왔다. 어느 때엔 눈이 좋지 않아 선글라스를 쓰고 견딘 적이 있었다. 멀리 보이게끔 도수를 넣어 두어 운전 때에도 편하게 착용하는 안경이었는데, 의아한 투로 묻는다. 더욱이 그날은 유난히 왼쪽 눈에 눈물이 비쳤으므로 그걸 가리려는 심산이었는데, 굳이 안경을 빼앗아 써보기도 하는 극성스러운 팬(?)들. 내 안경이, 내가 화두에 올라 한바탕 곤욕을 치르는 게 부담스러웠겠지만 어느덧 이도 아무렇지 않았다. 요즘 더러 들르는 곳이 있는데, 여긴 팀으로 움직이는 곳이어서 맨 앞이 정해진 자리이다. 뒷머리가 근질거릴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대신 엊그제 다녀온 남도쪽 떨어진 동백을 떠올렸다. 이도 세월이 준 뻔뻔스런 경지인지, 또다른 나에 대한 이해를 하는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