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린다. SNS를 달구는 들뜬 소식들. '첫눈이야!', 좋아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며칠 전 눈이 내렸다며 굳이 잘라버리는 이도 있다.
오늘은 그제와 달리 비가 내렸다. 그것도 아주 사납게. 번개와 함께 요란한 천둥소리가 날 때마다 대치동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무실을 나와 젖은 보도를 밟는데 조심스럽다. 대리석 바닥이 기울어져 있어 물기로 미끄럽다. 바람이 빌딩 사이를 감돌아 올랐다. 평소 발 디딜 틈조차 없어 부대끼던 전동차 안이 저리 소원하다니. 어린 아이 잇몸처럼 이 빠진 자리가 눈에 띌 정도이다. 밤 시각 입맛 다시던 아이를 위해 만두집을 기웃거렸더니 어둡다. 아홉시도 전인데 문을 닫았다. 일기가 심상찮은지도 모른다. 막연한 하늘을 본다. 드문드문한 빗방울을 음미하듯 고개를 들고 걸었다. 이 비 그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을이 끝났다는 게 실감난다. 어떤 노래를 들을까. 지난 시간을 더듬었다. 불현듯 돌아본 날들이 아득하다. 내가 지나온 길이 보이지 않았다. 죽은 날과 잃은 사랑을 음미하는 말을 들었다. 지난 시간이 밉다고 입 삐죽이는 너는 누구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올릴 수 없는 노래야말로 우리가 함께한 날이었던가. 에워싼 나무들이 울부짖었다. 바람이 휘저을 때마다 나뭇잎이 비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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