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힐끗 보는 어머니. 차림새가 헙수룩하면 그냥 넘기지 않는다.
"얘들은 어째 자라라는 키는 안자라고, 맨날 머리카락이나 손발톱만 이리 기냐?"
익숙한 잔소리를 뒤에 두고 쫓겨났다. 이발소를 다녀와도 머리를 바짝 밀지 않았다며 한소리 덧붙이기를 지겨워하지 않는다. 그게 부담스러웠을까. 어느 때 내가 죽어 있는 꿈을 꾼 적도 있다. 헌데 옴쭉달싹할 수 없는 몸과 달리 머리카락과 손발톱만 마구 자라 진저리쳤다. 정말 사람은 죽어서도 머리카락과 손발톱이 자라는 걸까. 얼핏 지나며 읽은 자료에는 사그라들고 주저앉는 육신에 비해 그대로인 머리카락과 손발톱이 주는 착시현상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믿게끔 된다고 했다.
손톱은 한달에 약 1.8밀리미터에서 4.5밀리미터까지 자란다고 한다. 또한, 자극을 받을수록 빨리 자란다. 이는 손톱으로 가는 혈류량이 늘어 세포분열이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즉, 엄지 손톱은 느리게 자라고 중지는 손톱이 빨리 자란다. 발톱은 손톱보다 반 정도 느리게 자란다. 나이와도 관계가 있어 서른살을 기준으로 자라는 속도가 차츰 느려진다. 머리카락은 하루 평균 0.4밀리미터 정도가 자란다. 한달이면 1.3센티미터, 일년에 약 15.6센티미터가 자란다. 역시 나이와 성별,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지며 계절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기록에는 삼십일년 동안 기른 머리카락이 6.2미터나 되는 사람도 있다. 긴 머리카락을 밧줄처럼 동여매고 살았다고 했다. 각각의 발톱 길이가 15.25센티미터나 될 만큼 기른 여성도 있다. 이에 반하여 엄지손톱이 80센티미터, 나머지 손톱 길이가 평균 73센티미터가 되도록 기른 이의 기록도 있다. 의아한 것은 이 사람이 타이핑 등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전혀 없다고 토로했을 정도이다.
새파란 나이 때의 어느 날, 지방에 다니러 갔다가 서울로 올라올 참이었다. 어찌어찌하다가는 열차를 놓쳤다. 출근해야 하는데 큰일이다. 한나절 빠진다거나 지각하는 걸 꿈도 꿀 수 없다. 자정 넘어 서울역에 도착하는 새마을 몇 편만 보이는데, 그 시각이면 집에 갈 일이 까마득하다. 그렇다고 아무 데서나 아침이 되도록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따지면서 궁리하는데 완행 한편이 눈에 띈다. 그야말로 통근열차이다. 밤새 달린 열차가 서울역에 닿는 시간이 아침 일고여덟시여서 애쓰면 간신히 회사에 닿는다. 다른 방도를 생각할 수 없다. 다행히 좌석표를 끊었다. 하룻밤 정도야 지샌들 어떨까. 열차 안이 와글거린다. 동대문이나 남대문시장에서 물건을 떼오려는 지방 상인들이 눈에 띈다. 거기에 한푼 열차삯이라도 아껴 서울 가려는 이들도 있다. 마주보게 한 육인승 좌석 옆 통로에도 들이찬 사람들, 팔걸이쪽에도 누군가 엉덩이를 걸쳐 성가시지만 감수해야 한다. 자정이 지나면서 번잡함이 사그라든다. 대신 무료함을 달래려는 두런거림만 남았다. 우리 자리에도 멀뚱하게 쳐다보아야 하는 맞은편 사람 움직임과 어색함을 지우려고 조금씩 말을 튼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어떤 일을 하시나요?"
필요 없는 말이라도 건네고 대꾸하며 면식을 익힌다. 하룻밤이면 만리장성을 쌓는다면서, 농지거리를 뱉을 정도가 되었다. 얼음처럼 굳은 내게도 더러 말을 시킨다. 누군가 열차 안을 지나는 상인에게서 계란을 산다. 개수가 어중간해 한 묶음을 더 산다. 또 다른 이가 귤을 사서는 나눠주기도 한다. 역이란 역은 기차가 모두 선다. 야밤임에도 눈만 땡그란 사람들이 올라타서는 점점 북새통이 되었다. 출출하다. 대전역에서 짬을 내 가락국수라도 먹을까 궁리하던 참이다.
"형씨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
엉? 앞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내게 질문을 던진 바람에 우물쭈물한다. 좌석에 앉은 이들과 손잡이에 엉덩이를 얹고 꾸벅꾸벅 졸던 이들이 순식간에 관심을 보인다. 쫑긋하는 귀들이 보인다. 얼굴이 화끈하다.
"조그만 출판사에 다닙니다."
대답을 듣고 안도하는 기색에 자세를 누그러뜨렸다. 대각선 자리에 앉은 처녀가 눈을 반짝이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 처녀를 보며 질문을 건넨 맞은편 청년이 손가락을 뚝뚝 꺾었다.
"아, 그래요?"
사실은 내게 던진 질문이 아닌가 보다. 내 눈도 안보고 처녀쪽에 눈길을 준 청년이 맞받아친다.
"저는 사무직에 근무합니다."
그리고 부연설명을 하는데, 의뭉스런 내 옆 아저씨가 고개를 내밀고 따져도 계속 사무직이란다. 웃을 수밖에 없다. 그이 투박한 손가락과 손톱에 낀 기름때를 본인은 알아채지 못하나 보다.
디자인실 김 부장은 사무실에서 아무 때나 손톱을 깎는다. 고요한 가운데 '딱딱'거리는 소리가 사람들 신경을 긁지만 그런 데 아랑곳없다. 제법 길도록 손발톱을 깎지 않는 아이를 채근한다.
"사람들은 눈치 채지 않는 중에도 그 사람 용모를 보며 여러 가지를 판단하는데 그게 뭐냐?".
잔소리가 거듭되면 아이가 한밤중에도 손발톱을 깎았다. 어머니는 거기 질색했다. 위생적이지 않다거나 밤중에 신체 일부가 줄어든다는 걸 참을 수 없었던 걸까. 예전과 달라 밤낮이 구별 없는 세상이다. 내 신체 일부를 먹은 들쥐가 나로 변신해 행세를 하며 집안을 꿰찬다는 이야기쯤이야 아무것도 아닌 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 온 속언 탓인지 나도 아이에게 그런 걸 막았다.
"야야, 이 시간에 뭔 손톱발톱을 깎냐?"
예전 일본 출장을 다녀오면서 손톱깎이를 사 온 적 있다. 새끼손가락만큼 작은 것이었는데, 허투루 볼 수 없는 것이 도쿄 한복판 번듯한 백화점에서 오륙십 개를 사 가격이 만만찮다. 거기에 빛을 갈무리하여 흑요석처럼 만든 이 제품이 제법이다. 조금만 힘 줘도 손톱이 깎이면서 주변 덮개가 없어도 손톱 조각이 날아가지 않았다. 그걸 사용한 이들이 볼 때마다 치하를 한다. 어느 때부터 아이 손톱이 알록달록하다. 성행하는 네일아트로 손톱을 치장했다는데.
백수를 미처 채우지 못한 아버지 백화되어 무딘 손발톱을 동생이 일일이 깎아주는 모습을 보았다.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아버지를 두고 이리저리 맴도는 동생. 사는 게 그런 것이었구나. 나는 앞으로 몇번이나 더 손톱을 깎을 수 있을까. 내 아이들이 손발톱을 깎아주기까지 버텨야 할까. 의식 없이 누운 내 모습을 그려본다. 아마도 꾀죄죄한 손발톱을 달고 있다면 그것도 문제이기에 늘 말끔하게 깎았다. 헌데 그게 끊이지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하며 손톱을 깎는 횟수가 수백 번은 넘었을거야. 깎을 때마다 초승달 모양으로 자란 손톱이 튀는 조각을 눈어림으로 챙긴다. 저렇게 날아간 날이 놀랍게도 수천 일은 지났을걸. 마지막으로 손톱을 깎는 것처럼 공을 들였다. 이게 다시 길지 않을 만큼쯤 눈 감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한 열흘 넘기기도 전에 손 끝에 잡히는 딱딱한 거추장스러움이 굴곡도 없이 이어지는 삶만큼 어려운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