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과 겨울이 다르다고 너도나도 이구동성이다. 받아들이는 것도 경험이 우선이다. 조금씩 추워지며 적응하던 겨울이 아니다. 기온이 하루 아침에 뚝 떨어졌다. 고슴도치처럼 움츠린 거리 인파들. 다들 종종걸음을 친다. 반가운 얼굴이라도 봐야 하는 때. 오랜만에 만난 이와 손을 맞잡았다. 따스한 상대 손을 느끼며 '아차!' 싶다. 나는 상대 열을 얻고, 상대는 내게 열을 빼았겼다. 실낱 같던 눈이 커진다. 억울해서일까.
"왜 장갑이라도 끼고 오시지 않고."
맨살을 감추면 갑갑하다거나 감촉이 떨어질까봐 두렵다는 핑게를 대야 할까. 빙점 아래서도 맨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내 손을 들여다 본다. 어느새 건조하고 주름이 많은 손. 이 손이 나에 대한 첫인상이구나!
낯선 미술부 선배들이 찾아왔다. 호출이라며 교무실 선생님께 가보라는데.....
얼마 전 부임한 미술 여선생. 호기심에 들뜬 아이들이 눈을 반짝인다. '예쁘냐?'며 소식을 들고 온 아이한테 되묻기도 한다. 기대하며 쫓아간 미술실. 작달막한 키에 안경을 쓴, 그렇고 그런 선생님을 본 아이들 입이 쑥 들어갔다. 우리를 지도하던 미술 선생님은 다른 학년을 맡는다고 했다.
첫 시간 과제가 소묘이다. 간단한 설명 다음에 자기 손을 대상으로 소묘를 하란다. 손을 쥐었다폈다 하며 살펴본다. 어떤 형태가 나을까. 양감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면서 마친 작품을 제출했다.
낯선 선생님 앞에서 쭈볏댄다. 고개를 숙이고 애꿎은 애꿎은 교복 끝단만 만졌다. 선생 책상에 내 소묘 작품이 놓여있다. 검은 뿔테 안경을 치켜올리는 작은 손을 보았다. 좀체 웃음이라고는 띌 것 같지 않은 얇은 입술이 열린다.
'네 작품이냐, 누가 도와 줬느냐' 등 엉뚱한 질문들을 해댄다. 고개를 흔드는 나를 보고도 미씸쩍은 눈길을 거두지 않는 선생. 가라는 손길 한번에 목줄이 풀린 개처럼 화다닥 쫓아나왔다. 쉬는 시간이면 철봉대로 달려간다. 가까운 자리 철식이는 다리를 절었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았다고 했다. 이도 이유가 될까. 팔 힘이 대단하다. 한 손으로도 거뜬히 철봉에 매달릴 정도이니. 더러 교실에서 팔씨름도 벌어졌는데, 대단한 덩치들도 철식이한테 이기지 못했다. 평행봉을 능숙하게 한 철식이가 내려와서는 씨익 웃는다. 거기 비하면 내 팔은 대꼬쟁이처럼 가늘었다. 지기 싫어 평행봉에 오르지만 철식이에 비할 수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술부 선배들이 다시 찾아왔다. 미술부에 가입하라는 선생님 말씀이 있었다는데, 고음을 내던 신경질적인 얇은 입술을 떠올리자 정나미가 없다. 완강하게 거절했다.
초등학교때 조개탄을 때던 것처럼 군대 내무반에서는 분탄을 난로 연료로 사용했다. '분탄'이란 일상적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우선 분말로 된 석탄 가루를 타온다. 이를 찰흙과 섞어 이긴 다음 척척한 채로 불길에 얹어 처바른 다음 기다린다. 불이 붙으면 뾰족한 쇠꼬챙이로 구멍을 내는데, 그게 구공탄 원리와 같다. 한겨울 내무반 불은 목숨보다 중요하다. 꺼뜨리면 열두 시간 내 전 내무반원이 소집되어 체벌을 받았다. 근무한 곳이 군사령부여서 영관급 이상 장교가 이삼십 명 되는 과에 사병이라야 겨우 한둘이었다. 오후 두시에 내무반 집합 명령이 떨어지면 과장인 대령이 붙잡아도 소용없다. 처장인 준장실이나 군사령관 당번도 예외없이 와야 했다. 어설프게 핑게대고 빠졌다간 재차 소집되었다.
불을 꺼뜨리기 보다 피우기 전 과정도 무시할 수 없다. 으쓱한 야산 구덩이에 트럭으로 부린 석탄 가루를 가져온다. 이를 들것에 담아 찰흙 있는 곳으로 가져간다. 파낸 찰흙을 물을 부어 석탄 가루와 이겼다. 담을 들것도 튼튼해야 한다. 생나무로 만들었는데, 내무반끼리 경쟁이 되어 외관부터 그럴 듯해야 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들것 가득 이긴 분탄을 싣고서는 두 사람이 앞뒤로 든다. 말이 쉽지. 들것 무게만도 이십여 킬로에 이긴 탄을 가득 실으면 무게가 칠팔십 킬로그램은 족히 넘었다. 고참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찰흙과 이긴 탄을 들고 오다가 허리를 다쳐 후송 간 명단도 수두룩했다. 찰흙이 평지에 있을 리 없다. 산기슭 비탈진 곳에서 내려오다 보면 그걸 앞뒤 어느 곳에서 드는가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겨우 들것을 들고와 내려 놓으면 사지가 후덜덜 떨린다. 손을 쥐었다폈다 하며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내뱉었다.
모필로 한문 차트를 쓰고, 상황을 본 내게 전역할 즈음 처장은 군무관 복무 제의를 했다.
내 손은 생각이 쫓는 대로 수많은 작업을 하거나 치밀한 일도 치르고 암벽을 기어오르는 등 힘든 일도 묵묵히 수행하며 남보다 앞서 나아가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어느 때 산행을 가는 인파에 섞여 있는 중 뒷자리 일행 눈길에 띄었나 보다. 무심코 뻗은 내 손을 누군가가 만진다.
"어머, 일이라곤 전혀 하지 않는 손인가 봐요."
한바탕 웃음 소리가 진동한다. 슬그머니 손을 빼도 짓궂은 손이 여기저기서 쫓아와 내 손을 만지작거렸다.
작은 아이 손은 어느 때부터 요란한 네일아트로 치장되어 있다. 보며 참는 것도 고역이다. 어느 때 꾸짖었더니 손을 감추며 변명한다. 미술 물감 등이 알게모르게 손톱에 배어 그걸 감추기 위해서라고. 거기 비하면 큰 녀석 손가락이야말로 미끈하여 한번에 피아노 세 옥타브 정도를 커버할 정도이니 다행이라 여겼는데. 호주에 보내 놓았더니, 웬걸. 요리에 빠져서는, 칼에 다치고 불에 데어서는 엉망이다. 말 없는 녀석 얼굴보다 손을 보고서는 억장이 무너질 뻔했다. 다치면 본능적으로 움츠리거나 들여다 봐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 애착이나 기미가 전혀 없는 것 또한 가슴 아프다.
Jean Sibelius, En Etsi Valtaa Loistoa
핀란드 타피올라 합창단(Tapiola Choir)은 녹음으로 경연하는 세계 합창 경연대회(BBC 주최) 전 부분에서 우승하여 실버로우즈볼(은쟁반) 상을 받으며, 일약 세계 합창 부문의 스타가 되었다.
'에르키 포욜라(Erkki Pohjola)' 교수에 의하여 창단되었으며, 부르는 현대 합창 작품들 난이도가 대단히 높아도 이들은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순회연주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