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그리운 나무 그늘

*garden 2019. 7. 4. 02:30












Antalzalai(violin) • József Balog(piano)









이런저런 제약이나 핑게로 억제했던 여행을 합니다.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마칠 즈음이면 다시 잇고, 새로운 곳으로 이동합니다. 그 바람에 신발이 너덜너덜해졌네요. 거기에 더해 발바닥이 부르트서 엉망입니다. 걷다 보면 다리도 엉키고 호흡이 가쁩니다. 그래도 살아오면서 처음 내가 바라던 일을 하는 중이니 기꺼이 감수하렵니다. 어느덧 여름이네요. 홀가분하게 오고갈 수 있지만 땡볕으로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입니다. 아무래도 쉬어야겠어요. 나무 그늘을 찾습니다. 커다란 나무 아래서 우선 당신께 편지를 쓸까요, 아닙니다. 어쩌면 당신에게서 받은 편지를 읽을지도 모릅니다. 한 자 한 자 음미하면서. 편지를 쓰거나 읽기도 전에 절은 피곤으로 잠에 골아 떨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인생이 속을 들여다보기 힘든 바다처럼 가뭇합니다. 누군가 남루한 몰골의 나를 지나치며 혀를 차겠지요. 아무려면 어떤가요. 신경쓰지 않으렵니다. 살 만큼 살았으니.
지겹게 이어진다 싶어도 이 여름은 어느 때 끝날겁니다. 조만간 올 가을에 이은 겨울, 봄 이야기를 쓸까 합니다. 진작 쓴 글은 들춰보지 않았어요. 무의미한 얘기를 접을까 합니다. 새로워지려면 나를 팽개쳐야겠지요. 더 많이 보고듣고 발이 닳도록 걸어야 하지 않을까요. 호박 넝쿨이 돌담을 넘어 주저리주저리 남은 생을 이어갈 때까지. 누가 염려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걷고 또 걸을 겁니다. 계절도 금새 바뀌겠지요. 해진 옷을 바꾸어 입어야겠지요. 물품을 새로 개비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걷는 것도 수련이어야 합니다. 그만 둬야지, 싶은 내면 소리가 한순간에도 열두 번씩 마음을 허물어뜨립니다. 오밀조밀한 한아름의 논둑을 지나 이 나무에서 저 나무까지, 이 강둑에서 저 강둑까지. 이를 악물고 걷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요. 웃어주어야 하나, 무표정할까. 지나치는 중에 저마다 손을 흔드는 푸르른 나무 잎사귀도 눈여겨 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지요. 그래, 이것도 얘기해 주자, 또 저런 얘기를 하면, 당신이 웃음을 머금지 않을까. 어쩌면 얘기를 잇는 중에 참지 못해 키득거릴지도 몰라. 그러다가 시무룩해집니다. 벌써 저녁놀 지는 하루. 어디서 잘까, 고민하다가도 고개를 흔듭니다. 억지로라도 소리내어 웃었지요. 어제도오늘도 혼자 걷고 혼자 밥을 먹으며 혼자 술을 마셨으니 말입니다. 혼자인 내가 별 걱정을 다합니다. 이도 웃기는 일입니다. 어쩌면 이게 내 마지막 길이더라도 감수하렵니다.
오늘 만난 아이와 엄마입니다. 무엇에 꽂혔는지,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돌려가면서까지 내게서 눈길을 떼지 않던 보석 같은 그 눈과 이를 겸연쩍어 하던 어머니 모습을 엽서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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