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 오래된 마을 한쪽에서
장작처럼 붉게 타올랐다가 한잔 술에 쓰러져 어둠에 묻혔다
발 아래 철썩이는 파도소리
절벽처럼 아슬한 간이침대 받침이 낯설어
한낮 더위에 해제된 온몸 신경들이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
나는 초생달처럼 구부러져 삐걱거리다가
새벽 한기에 재채기를 연속으로 뱉었다.
그래, 여름은 갔어
누가 뭐래도 가을이야!
어느 때인가 가을을 꿈꾸었을 슬픈 두 눈을 떠올렸다
그 가을과 다르겠지만 주어진 가을을 기꺼이 받아들여야지
십일 월엔 마구 뛰어다니겠다고 다짐했다, 내 굳건한 두 다리로
행장도 넓히리라고 작정했다, 생각 갈래들로 그때마다 덧채워야지
늘어진 오후 햇빛을 느긋하게 받으며 내 행동에 대해 실망스러웠던 까닭도 따져봐야지
익숙한 이들과 강화도에서 만났다
깨나는 갈무리된 시간들
까칠하고 메말라 다가들기 힘들던 얼굴들이 어느덧 푸근해졌다.
준비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매만지는 얼굴들
살아온 다음에야 느낄 수 있는 온기
이제 남은 시간들에 대한 바람을 말하고 싶을까
마찬가지로 비릿한 바닷내와 어우러진 장작 타는 냄새가 지워지지 않았다
나야말로 진즉 애월에서 들고온 감기와 씨름하느라 정신줄을 놓고 있다
기침도 예전 같지 않다
'컹컹'거릴 때마다 뇌가 흔들리고 가슴이 찢어진다
분주한 중에도 푸근한 기운에 맵싸여 허공을 떠돌았다
이 밤을 안온하게 받아들이는 건 나만의 특권인가
단 비, 외로우니까 사람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