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어디에 내려놓아야 할까

*garden 2018. 6. 28. 02:30








진창 이어지던 가랑비도 오후 들며 뜸했다. 일찌감치 전을 편다. 어스름 평상에서 어머니는 칼국수를 밀었다. 저녁을 떼운 다음 어디로 마실 가셨을까.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눅눅한 바닥이 견딜 만한지, 이리저리 딩굴던 동생들이 까무룩하다. 팔베개로 누운 채 어둑해지는 저녁을 지켜본다. 평상 위 아름드리 나무에서 거미 한 마리가 미끄러져 내려왔다. 살이 올라 통통한 거미가 외줄에 매달려 널을 뛴다. 무심한 내 눈길을 언제 피했을까. 건너편 나뭇가지로 옮겼다가는 다시 줄을 늘어뜨린다. 바람을 기다렸다가 조심스레 진작 늘어뜨린 씨줄로 건너서는 새로운 씨줄을 치는 거미. 조바심하며 침 삼키는 나는 관심 없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천라지망을 치고는 이내 펄쩍펄쩍 건너뛰며 날줄까지 완성했다.
차를 운행하다가 앞차 지붕에 매달린 소품에 관심이 간다.
"저건 뭐지?"
어른거리는 게 촛점에 잡히지 않아 차를 바짝 갖다붙이고서야 그게 장난감 스파이더맨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블 만화로 익숙한 스파이더맨이 영화로 완성되었다. 그런 영화를 보다가는 짜증이 인다. 진행을 하다보면 발목을 잡는 과거 한순간 기억에 매달려 움직이는 등장인물의 짓거리들이 성에 차지 않는다.

조용하고 말 없는 동서. 성격이 소심한 편이다. 대화 중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어느 때 꺼낸 말 끝에 장난삼아 꼬리를 붙이면 맺지 못해 어물거린다. 어느새 자리에서도 없다. 찾아보면 리모컨을 조작하며 혼자 티브이에 매달려 있다.
그런 그가, 운전대만 잡으면 눈빛이 달라진다. 무심코 그 차에 올랐다가 내린 식구들 낯빛이 하얗다. 고개를 홰홰 돌리며 두 번 다시 그 차에 오르지 않겠다고 공언한다.

'렌즈와 거울 위치에 따른 상의 모양'을 설명하던 선생. 박달나무 막대기로 탁자를 '탁!' 때렸다. 뜨거운 햇살이 창을 사정 없이 뚫고 들어오던 오후 시간. 아이들이 깜짝 놀랐다. 졸던 아이들이 고개를 든다. 새삼 전면을 주시했다.
"지금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알려고 하지 않는 게 더욱 이상타."
오만하게 막대기로 탁자를 받힌 물리 선생. 감기중인가. 수업중에도 벗지 않던 마스크를 아래턱으로 내려 길쭉한 얼굴이 더 길어 보인다. 입가 거품이 일게끔 설명해도 반응 없는 우리가 한심했겠지. 한바탕 잔소리를 퍼부은 다음 마스크를 끌어올리고, 출석부와 책을 주섬주섬 챙겨 나갔다. 가라앉아 있던 교실이 새삼 되살아났다.
"야, 어째 괴물이 오늘 불쌍하다."
"몸 상태가 안좋아."
"그 상판 보믄 밥맛인데, 그래도 마스크로 가리니 좀 낫잖어?"
"평판보다 실력은 최고라는데!"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한다. 길고 주름 많은 얼굴은 태생일거야. 아이들 눈을 안보며 던지듯 툭툭 내뱉는 말투가 질리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물리 과목에 더욱 흥미를 잃는 건 아닐까.

시골에 내려간 친구가 뻔질나게 전화를 한다. 전원주택을 지었다고. 한번 다녀가라는 바람에 작정하고 나섰다. 오랜만에 고속버스를 예매했다. 여장을 꾸려 올랐는데, 웅! 옆자리에 매치된 여자 아이라니. 은근히 기대된다. 단발머리에 이쁘장한 모습이 고혹적이다. 짐을 들이밀며 미적거린다. 헌데 눈길을 주거나말거나 휴대전화에 매달려 있다. 남자 친구인가. 가만, 이게 뭐야? 엉거주춤하다가 앉지 못했다.
"지금 어딘지 까발려!"
"뭐가 무서워?"
"죽을래?"
"내가 쫓아감 어케 되는지 알지?"
감추고 말 것도 없다. 그 고운 입에서 실타래처럼 쫓아나오는 언어가 무시무시하다. 저러다간 싹튼 사랑도 사그라들텐데. 상대가 유약해서인가. 남자들끼리도 쉽게 내뱉지 못하는 쌍욕이 난무하는 바람에 슬그머니 물러났다. 괜히 버스에서 내렸다가는 다시 올랐다.

낯선 도시를 헤맨다. 발가락이 얼얼하다. 물집이 잡혔을까. 열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무것도 못먹었어. 혼밥이 어색해 견뎠는데 어둑어둑하다. 별수없이 이집저집을 기웃거려도, 저녁에는 밥을 팔지 않는다며 문적박대하는 바람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요리를 곁들이고 마시는 술이야 질렸다. 먼지를 뒤집어 쓴 몸이라도 씻어야지. 사우나를 찾는다. 도중 빵집에 들렀다. 갈증도 인다. 근처 편의점에서 막걸리도 샀다. 걸으면서 병째 마셨다. 그런 나를 지나는 이들이 이상하게 본다. 입을 닦으며 병을 감추었다. 종일 해가 뜨거웠는데, 비로소 바람이 인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검은 비닐봉투 하나가 허공에서 춤을 춘다. 도로 한가운데 내려앉던 비닐이 커다란 버스가 지나는 바람에 다시 떠올랐다가 건너편으로 옮겨갔다. 건너편 도로를 질주하는 덤프트럭에 봉투가 다시 휘날렸다. 횡단보도에 서 있던 사람들이 멀뚱멀뚱 지켜보는 비닐의 현란한 춤. 지나던 아이 둘이 이 춤사위를 보다가 깔깔거렸다. 비로소 사람들 얼굴이 펴졌다.
저마다 개성 있게 지어진 건물들. 요란스레 올린 고층건물이 우뚝한데, 카메라를 들이댔다가는 포기한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 이상하다. 숲 속 나무들은 제각기 서 있어도 함께하면 잘 어울렸는데, 어인 일일까. 솟아오른 건축물들처럼 무뚝뚝한 사람들 표정도 천편일률적이다.

고속버스가 휴게소에 들렀다. 창가쪽에서 어렵사리 쫓아나간 여자 애가 돌아오며 무언가 내밀었다. 봉지에 든 땅콩과 커피이다.
"이것 좀 드세요!"
"엇, 고마워요."
출발 전 전화 상대에게 악다구니를 퍼붓던 여자 애는 어디 갔을까.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앉아서 손가락을 '뚝뚝' 꺾는 아이. 행동과 소리가 거슬리지만 이해해야지. 상냥하고 다정다감한 아이가 옆에 앉은 나 때문에 고민했을 시간 때문에 괜스레 미안하다. 차라리 내가 아무것이라도 사 와 내밀걸. 나이 탓이다. 쉽게 허물고 이해하는 아이들에 비해, 벽을 쌓고 외면하는 나야말로 어른이 아니다. 아무렇지 않게 털어넣고 깨먹는 그 아이의 고운 입술 안 땅콩 깨뜨리는 소리가 새삼스럽다.

앞차 꽁무니에 매달린 또다른 소품을 보았다. 며칠 전 승용차에 매달린 스파이더맨이 아닌 배트맨이다. 악세사리로 장식한 모양인데. 그렇게 영화 속 주인공을 재현하며 일상을 혼돈하면 어떡하지. 마블 주인공이 혼자의 막강한 힘도 주체하지도 못할 판국에 떼로 모여 세상을 구하는 영화가 나왔다. 행사로 집안 아이들이 모였다. 오랜만에 단체로 영화나 한 편 보자고 안을 내더니, 그 중 누군가 일갈한다.
"히스토리 없는 영화는 별로야!"
그런 꿋꿋함도 다들 화제를 몰고 가면 어쩔 수 없이 동참하겠지.

그 주인공들이 정작 영웅일까. 마음속 이성을 갈무리하지 못한 채 또다른 괴물을 잉태시켜 이를 행동으로 무절제하게 표현하는 이중인격의 주인공도 등장한다.
술을 한잔하고 몰던 화물차로 추돌한 승용차를 너댓번이나 되풀이해서 받은 운전자를 처벌해 달라고 청와대에 민원을 넣는 사람. 월드컵 출전 선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국대자격을 박탈해 달라는 사람 들. 법보다 더한 감성이 움직이는 모양새이다. 냉정하려고 애쓰는 나도 어느 때 언성을 높이며 상대 앞에서 입술을 잘근잘근 씹기도 한다. 언제까지 이런 행태를 되풀이해야 할까. 그름을 단죄하고 바른 세상을 세우려는 가치야말로 어디에도 없다. 옳고 그름이 없다. 그렇게 움직이는 세상이다. 어제 우리 나라가 독일을 이기자 비난일색이던 논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Cynthia Jordan, Celebration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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