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칠월 아내

*garden 2018. 7. 7. 02:30




"표정이 왜 그래?"
"당신한텐 말하지 말랬는데....."
"누가?"
"어머님이오, 안부인사로 연락을 드렸더니 말 끝에 한번 다녀가라고."
"그려! 무슨 일일까나. 연락해 볼까?"
"......"
"맛있는 걸 사 주시든지, 선물을 장만해 놓은 건 아닐까?"
반우스개삼아 얘기한다. 헌데 그리 쉽게 넘길 수 없을거다. 남자들이 대하는 처가와 달리 여자들 앞에 놓인 시댁은 험난한, 넘을 수 없는 얼음장벽이다. 더욱이 다녀가라며 시어머니가 날짜까지 제시했다니. 막막할게다. 말에 융통성을 부리지 않는 분이다. 할 말만 한다. 또한, 상대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 작정해도 소용없다. 예사로 대하기 어렵다. 결혼 전후로 혼자 내려간 적이 없다. 꼭 함께했다. 아니다, 혼수 문제로 나 없이 화급하게 내려간 적이 있었던가. 그때엔 처가 식구 중 누군가 동행해 마음 한 곳 불안감이 덜하지 않았을까.
"어떡하지, 어떡해!"
걱정이 태산인 아내를 다독이는 게 쉽지 않다. 혹여 불난 데 기름이나 끼얹을까 조심한다.
"따라가 집 근방 호텔 하나 잡아 놓고 묵을까?"
듣기 좋으라고 던지는 말이다. 회사 일 때문에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렇게 다녀온 아내를 불러냈다.
"그봐! 아무 일도 아닌 걸 갖고 야단난리더니. 그나저나 오늘은 맛있는 걸 먹고 마음에 드는 옷도 한벌 사자."
내려가기 전 입을 옷 걱정하는 모습을 보았다. 첫 아이를 낳고 치장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겠지. 무심한 나를 탓한다.
모처럼 낸 시간. 마음에 위안이 되게끔 동선을 짰다. 식사 후 내려간 백화점 매장을 마음껏 둘러보게 한다. 되돌아 온 자리에서 눈여겨보던 원피스를 샀다. 정장이라든지 투피스를 입은 모습은 눈에 익다. 이제까지 입지 못한 원피스를 피팅룸에서 입고 나와 짓는 환한 웃음에 한마디 보탰다.
"아, 이렇게 잘 어울리는 원피스를 왜 안입었어? 이 옷 입고 이번 주말 처가에도 가자."
이런 게 행복일거야. 먹구름이 걷힌 다음 햇살이 더욱 환한 것처럼. 아내는 근사한 쇼핑백에 담긴, 짙은 청색 꽃무늬가 그려진 옥색 원피스에 매료되어 집에서도 입어 보고 거울에 자신을 비춰본다.
이제 막 혼자 앉기 시작한 아이가 제 엄마 바뀐 때깔을 보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근사해. 아, 매장 아가씨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했듯 이 원피스는 당신을 위해 만들었어!"

회사 일이 걸리적거리는 걸 아슬아슬하게 뿌리치고, 휴일 아침 일찌감치 처가로 향했다. 여름 햇살이 아찔하다. 북적이는 시골 터미널에 내려 처가로 향하는 버스를 어렵사리 골라 탔다. 시끌벅적한 차 안 분위기에도 운전기사는 동요하지 않는다. 운행 전 운전대를 부여잡고 담배만 빨아 연기를 뭉게구름처럼 뿜어댔다. 간신히 자리잡고 앉아 차장 밖을 두루 살펴본다. 마악 매미 소리가 들릴 즈음이다. 포플라 나무 둥치를 선머슴처럼 잘라놓아 껑충한 모습이 우습다. 그 아래 땀을 삐질대며 가는 아낙네를 보았다. 아무렇게나 빗은 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하며 찌든 생활상이 한눈에 드러난다. 머리 위에, 늘어진 가슴보다 큰 보퉁이를 이고 걷는데, 아뿔싸! 코스프레가 아닐까 싶어 눈을 의심했다. 어떻게 저 옷을 입었을까? 서울 한복판 백화점에서 산 아내 원피스와 똑같은 원피스를 이 촌구석 덜떨어진 저 여자가 입고 있다니? 마침 아이에게 정신이 팔린 아내를 허겁지겁 좇는다.
"어휴, 여긴 왜 이리 더워? 날씨가 장난이 아니네."
엉뚱한 곳을 가리키며 채근하듯 몰아붙인다. 아내가 고개를 들었다. 옥색 원피스에서 일어나는 시원한 바람과 파도 소리를 들은 듯하다.
"어머, 어쩜 이리도 이쁜 옷을 입고 왔어?"
우리가 온다고 오랜만에 모인 자매들이 약속한 듯 입을 모았다.

그렇게 한여름을 꾸역꾸역 보냈다. 더러 아내를 불러내며 입고 나오는 옷을 관찰한다. 왜 아내는 그 옥색 원피스를 입지 않을까. 원피스 치장에 수줍은 듯 짓던 미소가 보기 좋은데 말야. 장롱 어디에 고이 넣어 두었을까. 그래도 그렇지. 어렵사리 선물한 시원한 원피스에 조갈증 이는 나를 정녕 무시하는 걸까.
어느 저녁, 술 한잔하고 들어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잇다가는 기어이 말을 꺼냈다.
"어, 그 남쪽 바다 물빛 닮은 원피스 어디 있어? 그렇게 마음에 든다고 하더니."
아내가 입을 기이하게 실룩거린다. 이제까지 내가 아는 그녀가 맞을까. 갑자기 건방진 말투가 익숙하게 뱉어진다.
"에이, 똑같은 기성복을 입은 터미널 시골 아낙을 본 순간 정나미가 따악 떨어져서."












Cathy Mart, Tender 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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