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한여름 꿈

*garden 2018. 8. 26. 02:30




"이번 주말에 다른 약속하지 말고 시골에 가요."
"웅! 무슨 일로 모이나?"
"감자를 캐기로 했어요."
"요즘 더위가 제법인데. 활동하기 편한 옷을 입고 가야겠네."
한데 모인다는 게 예삿일이 아니다. 떠들썩한 정경이 그려진다. 어느 때 정해졌을까. 식구라는 이름으로 묶인 우리. 처남은 일찍부터 가 있겠지. 허드렛옷으로 갈아입고 하천에 쫓아나가 그물을 뿌릴게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았는데, 물은 괜찮을까. 처음에는 여의치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그물을 거두겠지. 고기가 있을 만한 장소를 아끼면서 주변을 쑤썩일거야. 바위 틈에 손을 넣어 보겠지. 둔덕 옆을 바쁘게 후드긴 다음 힘차게 뿌린 그물에, 꺽지나 빠가사리라도 보일라치면 비로소 입을 헤벌리지 않을까. 식구들을 위한 매운탕에 그보다 좋은 재료가 없으므로. 동서들이 속따로 겉따로 노는 동안 자매들은 깔깔거리며 목청을 돋우겠지. 아이들은 저희끼리 몰려 다니면서 신 날거야. 온밤내 거리낌없이 함께한다는 건 각각의 일생이 모여 한데 딩구는 일이다. 살면서 이보다 나은 일이 어디 있나.

회사일을 마치다 보니 생각보다 늦다. 뒤늦게 식구들을 태우고 쫓아갔다. 어둠이 진한 시각에 닿은 동구밖. 자동차 불빛과 소리에 너도나도 나와 있다. 차들을 끌고 와 마당이 꽉 차 있다. 여기서 소리 지른들 저기서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인 동네를 크게 한바퀴 돌았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다. 언제 쫓아왔을까. 거기는 안되고, 여기는 괜찮다며 인도하는 식구들. 동네 인정도 실상은 나 같지 않은가 보다. 가급적 껄끄러운 자리를 피해야지. 막상 주차해 둬도 이른 아침 빼야 할 곳도 있다.
불빛 환한 집 안에 발 들이면 그 동안의 회포를 쏟아 놓기에도 아쉬운 시간. 흩어진 상을 재빨리 치우는 손이 있는가 하면 새로이 음식을 장만하는 손도 있다. 따뤄주는 술을 거푸 들이킨다. 오가는 우스개에 다들 뒤집어진다. 그렇게 깊어가는 밤, 무논 개구리까지 밤새 쉬지 않고 와글거린다.

늑장을 부렸나. 어젯밤 법석과 달리 쥐죽은 듯한 집 안. 모두 어느새 감자밭에 쫓아나갔을까. 우리도 가자, 서둘러야지.
"헌데 밭이 어디쯤이야, 알기는 해?"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어림 없다. 하천 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된다는데. 긴가민가하면서도 가야겠지. 그래, 옹기종기 모인 모습이 보일 것도 같다. 옳지. 마당 한켠에 치워져 있는 짐 자전거를 훑어본다. 작은 아이라도 태우고 갈까 했는데, 큰 애도 타겠다고 하고 아이 엄마도 뒤에 앉겠다는데. 오랜만에 잡은 자전거 핸들이 버겁다. 거기 온 식구가 올라앉아서야. 그래도 용케 마을 입구 언덕도 오르고, 간이 버스 정류장을 지나 둑방길에 올라섰다. 말간 햇빛이 눈부시다. 푸르른 들판에서 몰려오는 생명의 기운들. 아, 고개를 들고 힘차게 소리를 질렀다.
"엇차, 엇차차!"
페달을 밟자 위태롭던 자전거에 가속도가 붙으며 여유가 생긴다. 앞에 앉은 아이 머리도 쓰다듬으며 어깨를 우쭐거렸다. 동네 밖에 펼쳐지는 광활한 세상. 구름이 비질한 것처럼 가지런하다. 함께 노래라도 부를까. 독려하려다가 눈을 크게 떴다. 저게 무얼까. 앞쪽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드는 게 있다. 가만, 좁은 둑방 위에서 자전거를 세울 곳이 없다. 엄두도 못내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달려든 트럭과 맞닥뜨렸다. 설마 싶었는데, 이 녀석이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더욱 세차게 밀어붙인다. 그 바람에 둑방 한쪽으로 핸들을 틀었다가는 기우뚱한다. 그렇찮아도 마른 진흙 바닥이 울퉁불퉁하다. 자동차가 다닌 바퀴 자국이 패여 고르지 못한 길을 어렵사리 견디던 참이다. 간발의 차이로 트럭이 지난 다음 우리 식구는 나동그라졌다. 경사면을 따라 논바닥에 굴러 떨어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욕지기를 뱉으며 사라지는 트럭을 매섭게 돌아본다. 낄낄거리며 운전대를 잡고 있을 녀석을 몇 대 패주고 싶다만. 아우성치며 꼬마들이 일어난다. 큰 녀석은 이마에 상처도 생겼다. 저절로 혀를 찼다. 다시는 아빠 자전거에 타지 않겠다는 아이들을 세우고 일렬로 걸었다.

능구렁이처럼 똬리를 틀었다가 합해지기도 하고 사이가 벌어지며 흐르는 강. 미루나무 우뚝한 둔덕, 한주먹으로 틀어쥐면 흘러내리던 고운 흙 감촉이 살아난다. 캐낸 감자를 식구들마다 한가득씩 실었다. 그리고 잘 생긴 햇감자를 한 솥이나 쪘다. 온 식구가 입김을 '호호' 불며 뜨거운 감자를 베어 먹는다. 담백한 물 맛도 스며있고, 싱그런 바람 맛도 있으며 텁텁한 흙 맛도 배어있는 장한 감자를 맛있게 먹었다. 한사코 더 가져가라는 어른 청을 물리쳤다.
"이 만해도 한참 잘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신 한몸 헌신으로 닮은 감자를 수없이 만든 이치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빗발치는, 싫지 않은 온갖 비난.
"큰 상처는 아니다만 한동안 늠름한 얼굴에 흠이 지겠네."
"그 괘씸한 트럭 운전수를 그냥 보냈단 말이에요!"
"아니, 누가 감자를 호미로 이렇게 다 쪼아 놓았을까나?"
바람이 일었다. 어느새 습기가 더해졌을까.
"비가 올 듯한데. 다들 출발해야지."
어지러운 바깥 세상. 굳이 지키고 싶은 이 세상을 어쩔까.














Yanni, Reflections of pa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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