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선선한 저녁, 바깥을 내다본다. 오랜만에 이는 청량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 술 한잔 할까. 이 친구 저 친구를 떠올렸다.
A, 찾아가기에는 좀 멀다. 서울 반대편에 있으니.
B, 여행중이랬지. 연락을 하지 않아도 근황을 볼 수 있는 SNS가 열려 있으니.
C, 머리를 흔들었다. 말이 너무 많아. 그리고 술을 한잔 들이키면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다. 목소리가 점점 커져 나중 제어가 안돼!
D, 여편네를 데리고 나올지도 몰라. 나를 보면 환한 웃음을 짓는 그녀에게 나를 핑게 대고 어느 때 종적 묘연한 시간을 만들겠지. 나중 조심스런 어조로 전화를 한 그녀에게 무뚝뚝하게 으레 그렇고 그런 답변을 내놓을지도 몰라.
E가 괜찮지만 시월 초 설악 공룡에 작정하고 가기로 약속 되어 있으니, 참아야지.
별수 없다. 혼자 나앉을 수밖에. 아련한 수은등 불빛 아래를 걸어 평소 가지 않은 곳으로 향한다. 시끌벅적한 술집을 서너 개 지나 한적한 곳을 기웃거렸다. 여기도 괜찮다. 들어가서 자리에 앉자 안온한 기운이 어려있다. 더구나 말없는 술이 벗이어서 기꺼이 상대해 주니. 머리를 갸웃했다. 바깥에서 힘빠진 매미 소리가 '잉잉'댄다. 아직도 남아 있었더냐. 소임을 마치지 못한 너 자신에게 보내는 연가 같은 소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