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초식성 비애

*garden 2019. 8. 2. 02:30











날마다 몸집을 불리는 도시. 파뒤집고 엎어놓은 길을 피해, 오늘도 조심스럽게 걸었다. 굴착기나 레미콘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름도 낯선 우람한 장비들이 예사로 횡행한다. 여기를 훑고 내일은 저기로 가볼까 하다가 포기했다. 대로변은 번듯해도 질색이다. 반면에 뒷골목은 감출 수 없는 민낯이다. 화장 잘한 이보다는 입술 연지 잘못 그렸어도 표정 있는 모습이 더 생동감 있지 않은가. 어둠이 내릴 때의 낯선 감정에 깃든 설레임. 누그러지는 감정에 더해 바쁜 발걸음과 어딘가 가 있어야 할 막막함들이 어우러지는 성급함에 뒤엉킨 무리. 그 사이에 섞여 떠돌다 맛있는 냄새를 맡았다. 익숙한 냄새야. 호기심이 동해 기웃거리며 따라간다. 여기쯤인데. 새삼 후각을 작동시키며 주변을 돌아본다. 식당 같지 않은 선술집이다. 우중충한 나무 문을 밀었다. 조도 낮은 등으로 치장한 실내에 낯을 찌푸렸다. 망설이는 내게 오밀조밀한 사람들이 눈길을 준다. 후끈한 바깥 더운 기운과 쏟아지는 빛 세례 때문인가. 어줍잖게 등을 보이고 돌아서기는 싫다. 그래, 발을 들였다. 육중한 문이 제품에 닫힌다. 예상보다 작은 실내에 단출한 분위기. 게름칙하지만 냄새에 굴복하여 벽면을 마주하고 앉았다. 미리 앉아있던 이들 앞 큰 대접을 보았다. 사실은 '아차!' 했다. 이제서야 정체를 알았다. 아예 먹지 않는 계장국이잖아. 고개를 흔든다. 지금은 허기져 있으니. 한끼 음식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감사히 받아야지. 차제에 나도 음식 선호도를 넓혀야 하지 않을까. 새삼 초식성인 내게 은근 불만인 주변 사람들을 떠올렸다. 자리를 만들려고 해도 내 눈치를 보며 정하는 바람에 고심했을거야. 한주에 한번씩은 남의 살도 먹어야 한다며 입맛을 다지는 식구들 모습을 떠올리자 수긍된다. 포용하자 헛배도 부르다. 검지와 중지로 피아노를 치듯 나무탁자를 두드렸다. 나타난 주인 여자 몸집이 우람했다. 눈도 크다. 흰자위를 드러내며 쓰윽 나를 훑는 바람에 뜨끔했다.
"저도 저걸로 주세요."
"그게 오늘 메뉴입니다."
다른 음식은 없다는 얘기다. 자신만만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돌아서가는 손솜씨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런 대로 먹을 만했다. 걸죽한 국물에 손으로 찢었는지 두툼한 닭살이 제법 걸린다. 옆자리 늙수그레한 남자들이 시끄러웠다. '쩝쩝'대는 소리가 요란하다. 와중에 설전을 그치지 않았다. 온순한 듯 변명하는 이에게 다른 일행이 몰아세우는 형국이다. 그만 했으면 좋으련만 같은 이야기를 지치지도 않고 되풀이한다.
"막걸리도 한병 주세요."
마침 나를 향한 주인 여자에게 요구했다. 옆자리에서 다시 목청이 커졌다. 신경 쓰지 않으려 했으나 소란이 지워질 계제가 보이지 않았다. 계장국에 밥을 말았다. 건성으로 떠먹는다. 주객이 바뀌어, 인제 술이 주식이고 밥이 안주이다. 변명하는 이를 면박하는 사내들 목소리가 커졌다.
'거참!'
혀를 찬다. 술을 벌컥벌컥 마시고 국밥 한 숟가락을 떠먹었다. 고기 속에 딱딱한 게 걸린다. 무심코 삼켰다. 그러다가 '아차!' 했다. 뼈를 미처 골라내지 못했다. 거칠거칠하고 긴 뭉텅이가 '꿀꺽'하는 순간 내려가다가 식도 중간에 딱 걸렸다. 난감하다. 얼결에 엉거주춤 일어섰다. 주변 사람이 눈치 못채게 헛기침도 하고, 입을 크게 벌려 용을 쓰지만 소용없다. 술을 들이켰다. 입안 머금은 술을 넘길 때마다 통증이 인다. 밑반찬으로 있던 열무김치나 깍두기를 잘게 씹어 넣어도 마찬가지. 음식을 휘젓다가 남은 술만 마시고 일어섰다.

장마 끝이라더니 소나기가 잦다. 비가 억세다. 서울 비는 한낮보다 밤이나 새벽녘에 활개를 쳤다. 이 비는 우산을 써도 소용없다. 바짓단이 젖은 채 한참 걸었다. 목 안쪽 통증이 그치지 않았다.
밤새 뒤척였다. 잠자리에서도 오직 한곳으로 신경이 간다. 바로 눕지 못해 옆으로 누웠다. 뼈가 걸린 자리가 쿨럭댄다. 다른 감각은 늘어져 감감한 판국에 오직 거기만 깨어 있다. 자는 중에도 수시로 일어난다. 식도가 저 혼자 수축을 거듭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이물질을 내려보내려 한다. 그때마다 식은땀이 났다. 새벽녘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일어났다. 빗소리가 요란스러웠다. 화장실에 가서 헛구역질로 걸린 닭뼈를 게워내려고 애썼지만 허사다. 대신 땀으로 젖은 몸뚱아리에 찬물을 한바탕 쏘아댔다. 엊저녁은 왜 그리 서둘렀을까. 보통 식당에 몰려가서도 나물 등이나 집적거릴 뿐 고기 나부랭이에는 일절 손대지 않았는데, 뭔 심사였을까. 후회가 막심하다. 그보다 신중하지 못했던 나를 탓하지만 엎질러진 물. 짧은 트림이 시도때도 없다.

일상 생활이 고역이다. 양치질이나 음식을 마주하는 일 등에 진땀을 뺀다. 이틀 뒤 모임에 가서도 마찬가지. 사람들이 너무 안먹는다며 내 접시에 음식을 얹어 놓을 때마다 질색했다.
가슴 통증으로 죽을 뻔했다가 스탠스 수술로 사경을 넘긴 후배가 모처럼 왔다. 내가 가슴을 자주 쓰다듬는 게 눈에 띄었는지, 지레 내지른다.
"형님, 가슴이 아픕니까?"
"........"
"아플 땐 우선 큰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침을 삼키거나 헛기침만 해도 통증이 수반되었다. 그럴듯한 조언에 웃기도 힘들다. 마지못한 내 사정을 들은 이들이 얼른 병원에 가라는데 그러기가 싫다. 가봐야 이물질을 집어넣어 휘젓는 일밖에 더 하겠는가. 마침 통화한 선배는 김에 밥을 잔뜩 싸서 삼키라는데. 그 무게로 걸린 뼈가 가라앉을 거라면서. 집으로 들어가기 전 공원 한귀퉁이에서 나무를 짚고 있었다. 풀만 먹고도 거뜬히 세상을 휘저으며 떠오르고 싶었건만. 먹고 사는 일을 이 나무는 어떻게 견뎌왔을까. 훨씬 오래 전 큰 수난을 겪었는지, 아랫 둥지가 휜 채 커다란 옹이를 품고서도 아름드리로 자란 고목이 대견하다. 이해의 첫 매미소리가 여린 밤이다.
















Vitalij Kuprij, Crying in the Shad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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