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나오기 전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어째 그넘들은 허고헌날 쌈박질만 하고서도 돈을 그리 많이 받냐?"
"쌈박질이라믄 너도 빠지지 않잖아! 왜 거기 가지 않고 여기서 떠들고 있냐?"
"내가 가면 소는 누가 키우노?"
"우리 정치꾼들 쌈박질은 유래도 깊어. 임진왜란, 경술국치 등 오죽허니 나라를 말아먹으면서도 상대방을 까뭉개기만 했을까?"
"그걸 좋은 면에서 말하면 비판이라는 거지."
"내일 세상 망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입으로만 싸워?"
"그나저나 지금 법무부 장관 후보자 그넘 안되겠더만."
"본인이 하겠다면 누가 말려. 청와대에서도 끝까지 밀어주겠다는데."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자리잡으면 좋을까나."
"얌마,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거야. 허고 내 사람을 거기 앉히겠다는데 누가 말려."
"야야, 그만 해. 술맛 떨어지게시리. 그렇찮아도 이번 주일 교회 꼭 가야 한다는 엄포를 마누라한테 들었구만. 정치나 종교 얘기는 우리끼리라도 끊자. 제에발!"
"그래, 이제 그만하지. 헌데 그 조국 말여!"
"야아!"
말 끝에 다들 실소했다.
강술을 들이킨다. 안주라도 한점 들라는 권고도 있지만 입에 당겨야 말이지. 두어 시간째 이어지는 회식. 정신은 선술집 위 허공에 떠있다. 돈 없는 시인이 편집장이라 대안이 없다. 안주 대신 벌건 백혈등 아래 말씀만 풍족하다. 글쎄, 몽롱하던 중 화제에 익숙한 이름이 나열된다. 얘는 이래서 안되고 쟤는 너 알지, 알지.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할까. 감았던 눈을 떴다.
"없는 사람 얘기를 여기서 하다니요? 그만하십시다!"
직속 상사이다. 도를 넘으면 안되지. 이런 순간이 답답하다. 주제 넘은 내가 의외였을까. 다들 말을 끊었다. 편집장이 손을 휘저었다. '감히 어디서?' 아니꼬운 눈치인데, 눈을 끔벅였다가는 크게 떴다. 헌데 이상하다. 우리끼리일 땐 열심히 씹던 동료들이 고개를 숙이거나 한눈을 판다. 아무도 토를 달지 않다니. 이게 당신에게 가는 묵언응원이라 생각하는 걸까. 젓가락을 들어 술잔을 치다가는 놓는다. 내게 이를 가는 걸까.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절제하던 야만성을 드러낼 뻔했다. 마주친 시선. 한참 어른이니 책잡힐 행동을 말아야지. 헌데 포기할 수 없다. 술이 취했다고 만만히 여겼겠지. 서늘한 내 눈빛을 보자 더듬댄다. 이 사람 습관이다. 상대가 강하면 말을 그친다. 앞니가 빠지고서도 한참 해넣지 않는 건 왜일까.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가 놓는다.
"송곳은 주머니 안에 있어도 튀어나오니까 조심해요."
영문을 알 수 없는 충고이다. 누가 송곳일까. 내 뾰족한 성격을 지칭하는 말인 듯하지만, 따지면 이 자리가 꼬인다. 그만 접어야지. 대신 이제부터 어쩔 수 없이 당신을 경멸하게 될 것이다.
작정하지 않아도 순식간에 올랐다. 온 사무실 직원들 눈길이나 생각이나 업무까지 내게만 집중된다. 비로소 거칠 것 없다. 하지만 조심해야겠지. 사사로움에서 벗어나 걸어갈 길을 사려하고 조정한다. 지난 시간이 혹독했다. 바로 위 상사 때문이다.
사소한 일도 놓치지 않는다. 토씨 하나쯤 감성적 글귀 한줄쯤.....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에도 무시로 따진다. 그것도 목숨을 걸고서. 하루에도 열두 번씩 전쟁을 치뤘다. 오래도록 함께하던 이들은 고갯짓을 한다. 저분이 우리 출판사 역사상 가장 무서운 인물이라면서. 어느 때인가 수틀리는 일이 있었다. 온 회사 사람이 가슴 조이고 있을 때 머리를 박박 깎고 눈썹까지 깡그리 밀고 나타난 적도 있다고 했다. 그 전력을 아는 사람들은 나를 측은하게 여긴다. 이런저런 사담 끝에 덧붙인다. 그 앞에서도 무섬증을 타지 않고 태연한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타부서 사람은 내 상사에게 해야 할 이야기를 우선 내게 상의한다. 무게감 때문인지 내 상사는 외부에 전달해야 할 이야기를 모두 내게 일임했다. 사소한 것부터 중차대한 일까지 그치지 않는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일분이 멀다 하고 달달 볶았다. 말로 끝내면 오죽 좋았을까. 하루에도 몇 건씩 리포트를 작성했다. 장 수가 두툼한 건 예사이다. 와중에 업무에 부적합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쳐날리는 건 약과다. 한 파트 다섯 명에게서 하루 아침에 사표를 받은 적도 있다. 의의를 달면 내게 오는 눈빛이 사납다. 결국 아무렇지 않게 피를 묻힌 내 손을 바라보았다. 이래서야 견딜 수 있을까. 고뇌하는 내 눈과 마주치면 부서직원들은 찔끔했다. 상념은 사치다. 여기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조직이어서 잠시라도 한눈을 팔 수 없다. 회사에 머무는 하루 열다섯 시간이 모자란다. 좋은 점도 있다. 그 상사가 의리 빼면 시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나보다 먼저 사람들을 끌고 지방 상가에 가 있을 정도였다. 때가 되어 그 자리를 내가 차지했다. 사람들은 당연히 나를 그 상사 대하듯했다. 나는 평상시대로 다름없이 행동하지만 일거수일투족을 회사 주변 모든 이가 주시하고 있었다.
자리는 권력이다. 조직을 업신여기거나 대들라치면 응징한다. 만만하게 다가오는 이도 가차없이 물리쳐야 한다. 공고해진 내 세상이어야 비로소 마음놓인다.
나보다 손위인 디자인 파트장은 직급이 낮다. 그게 자격지심으로 작용한다. 표출하여 상쇄시키지 않으면 답답할 게다. 심심하면 수십 년 근무한 걸 자랑인 양 떠벌인다. 거기까지만이면 다행이련만 텃세도 제법 부린다. 디자인이나 삽화 등을 의뢰하려고 부서 사람들이 가면 내 사인을 일일이 받아오라고 한다. 직급 서열로 따지면 이도 우습다. 바쁘다는 핑게로 강짜를 놓고 거들먹거리기도 하나 보다. 가당찮다. 얘기를 거듭 들은 순간 부서 삽화 등을 외주로 다 빼내 버렸다. 삼사개월 정도 지나자 은밀히 사정한다. 일이 없으면 자기 파트 사람들을 정리해야 하니 어떻게든 봐달라고. 자기 잘못을 드러내 시인하지 않는 건 자존심 때문이다. 이도 예의이니 개전의 정이 보이면 이쯤해 둬야지. 사람들과 마음을 열려면 인간적이어야 한다.
위에서야 다들 인정하니 별문제가 생길 수 없다. 아래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문제이다. 더러 꼴통짓을 하는 녀석이 몇 있다. 법보다 주먹이라고, 기회를 엿보다가 술자리에서 두어 녀석을 줘패기는 했다만 개중 한 놈은 공공연히 나를 대상으로 여기는 허툰짓을 숨기지도 않는다. 이는 방법을 바꾼다. 상대해 봐야 위신만 깎는 일이어서 무시해 버린다. 아이들처럼 티격태격하기엔 생이 아깝지 않은가. 뒷이야기이지만 내가 물러난 다음 두어 달도 되지 않았다. 사석에서 만났는데, 내가 없으면 천년만년 할 것처럼 거들먹대던 녀석이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왔다며 고개를 숙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너는 이미 목록에서 제외되어 있으므로 개의치 않는다.
'오랜만이야!', '그 동안 어떻게 지냈니?', '그래, 하고 있는 일은 잘되고?'
조만간 명절이면 마주칠 가족친지들에게 으레껏 하고듣게 될 말이다. 인사가 고역일 수는 없지만 시절이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상대에 따라 달라져야 하겠지만 한마디 하더라도 솔깃한 말이어야겠지. 귀에 거슬리지 않는, 가슴 찌르지 않는 편안한 말을 떠올리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면 나야말로 내 본분을 다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해서는 고개를 내젓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까,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가는 닭과 달걀 같은 경우이다. 꾸역꾸역 오르는 중 제풀에 떨어지는 사람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정상에 가겠다는 것을 미리 설정하고 행동하려면 거기에 맞는 자기 얼굴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 모두가 원하는 그 자리는 대단히 고독한 자리이다. 어쩔 수 없이 주변과 괴리된 자신을 느낄 수도 있다. 홀로 견디고 판단하며 해결해야 할 일이 산처럼 쌓여있다. 어느 순간, 그 자리가 만만하다고 여긴 때 덜컥 내려올 수도 있다. 그 다음도 받아들여야 한다. 내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고 나를 만나는 과정. 몸과 마음이 얽매이지 않은 자연 등에서 동화할 수 있는 본인을 진작 길러 두어야 한다. 무미건조한 듯해도 우리는 한순간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것까지 직시해야지. 내가 머무르며 집착하는 자리는 어쩌면 허상일 뿐이다.
I'm Your Man, 1988, Sony
Everybody Knows
Everybody knows that the dice are loaded
Everybody rolls with their fingers crossed
Everybody knows that the war is over
Everybody knows the good guys lost
모두 알아, 주사위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걸
모두 주사위를 던져, 간절히 행운을 빌면서
모두 알아, 전쟁이 끝났다는 걸
모두 알아, 선한 사람들이 졌다는 걸
Everybody knows the fight was fixed
The poor stay poor, the rich get rich
That's how it goes
Everybody knows
모두 알아, 싸움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걸
가난한 이는 여전히 가난하고, 부자는 더 부유해져
세상일이 다 그런 거지 뭐
모두 알아
Everybody knows that the boat is leaking
Everybody knows that the captain lied
Everybody got this broken feeling
Like their father or their dog just died
모두 알아, 배에 물이 새고 있다는 걸
모두 알아, 선장이 거짓말 했다는 걸
다들 느끼고 있어, 참담한 기분을
마치 자기 아버지나 개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Everybody talking to their pockets
Everybody wants a box of chocolates
And a long stem rose
Everybody knows
모두 얘기하고 있어, 자기 호주머니 사정에 대해
모두 원해, 초콜릿 박스를
그리고 줄기가 긴 장미를
모두 알아
Everybody knows that you love me baby
Everybody knows that you really do
Everybody knows that you've been faithful
Ah give or take a night or two
모두 알아, 당신이 날 사랑한다는 걸
모두 알아, 당신 사랑이 진실하다는 걸
모두 알아, 당신이 그간 진실했다는 걸
아, 하루이틀 밤 정도는 안그랬다 해도
Everybody knows you've been discreet
But there were so many people you just had to meet
Without your clothes
And everybody knows
모두 알아, 당신이 그간 사려 깊었다는 걸
하지만 당신은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지
옷도 제대로 못입고 말야
또한, 모두 알아
Everybody knows, everybody knows
That's how it goes
Everybody knows
모두 알아, 모두 알아
세상일이 다 그런 거니까
모두 알아
Everybody knows, everybody knows
That's how it goes
Everybody knows
모두 알아, 모두 알아
세상일이 다 그런 거니까
모두 알아
And everybody knows that it's now or never
Everybody knows that it's me or you
And everybody knows that you live forever
Ah when you've done a line or two
그래. 모두 알아, 지금 아니면 영원히 아니라는 걸
모두 알아, 나 아니면 당신이라는 걸
그래. 모두 알아, 당신이야말로 영원히 산다는 걸
아, 당신이 코카인 한두 번 하고나면
Everybody knows the deal is rotten
Old Black Joe's still pickin' cotton
For your ribbons and bows
And everybody knows
모두 알아, 썩은내 나는 거래라는 걸
늙은 흑인노예 조는 지금도 목화를 따고 있어
당신들 리본과 나비 넥타이를 만들려고 말야
그래. 모두 알아
And everybody knows that the Plague is coming
Everybody knows that it's moving fast
Everybody knows that the naked man and woman
Are just a shining artifact of the past
그래. 모두 알아, 재앙이 다가오고 있어
모두 알아. 그 재앙이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는 걸
모두 알아, 벌거벗은 아담과 이브는
빛나는 과거 유물일 뿐이라는 걸
Everybody knows the scene is dead
But there's gonna be a meter on your bed
That will disclose
What everybody knows
모두 알아, 죽은 장면이라는 걸
당신 침대 위에서 시신 검사가 있겠지
그래서 만천하에 알려지겠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
And everybody knows that you're in trouble
Everybody knows what you've been through
From the bloody cross on top of Calvary
To the beach of Malibu
그래. 모두 알아, 당신이 곤경에 빠졌다는 걸
모두 알아, 당신이 왔다는 것을
골고다 언덕 꼭대기의 피투성이 십자가에서부터
말리부 해변까지
Everybody knows it's coming apart
Take one last look at this Sacred Heart
Before it blows
And everybody knows
모두 알아, 이게 산산조각나고 있다는 걸
그리스도의 이 심장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봐
터져버리기 전에
그래. 모두 알아,
Everybody knows, everybody knows
That's how it goes
Everybody knows
모두 알아, 모두 알아
세상일이 다 그런 거니까
모두 알아
Leonard Cohen, Everybody Knows (Live in Dub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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