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일상은 어디서나

*garden 2021. 6. 23. 13:42












"한참 더운데 이번 주말에 바람이나 쐬러 가자?"
"뜬금없이 바람이라니, 누구와 어디서?"
"그냥 우리 모임이지. 토달지 말고 시간, 장소 일러줄테니 빠지면 안돼!"
"준비물이라든지 각자 챙겨야 하는 것이라도 있겠지?"
"한두 해 본 사이야? 한꺼번에 준비하고 나중 일정하게 나눌테니 몸만 나와."

그렇게 해서 본의 아니게 해가 쨍쨍한 휴일, 유흥을 떠나게 되었다. 연천 어디쯤으로.
"자, 신 나게 달려보자고. 오늘 운전은 내가 봉사할게. 모두의 즐거운 하루를 위하여!"
N이 승합차 운전대를 잡았다. 금방 흥겨운 트롯 메들리가 오디오에서 줄줄이 쫓아나왔다. 쭉 벋은 자유로를 달려갈 때 소풍 가는 병아리마냥 떼창도 더러 이어진다. 눈을 시리게 만드는 차창 밖 푸른 초목이 눈앞으로 달려왔다가 뒤로 휙휙 사라졌다. N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쪽 발로 장단을 맞추고, 운전대를 잡은 손 외 다른 손도 노래를 따라 까딱거렸다. N이야말로 가히 트롯신이라 할 만했다. 온몸에 뽕 감각이 넘쳐흐른다. 구성진 가락이 꺾일 때마다 목과 어깨가 곁다리로 넘어갔다 바로 돌아왔다. 허긴 애국가도 그 입에서 시작하면 트롯 가락으로 바뀔 정도이니 오죽할까.
목적지에 도달하여 자리를 폈다. 여기저기 더위에 지친 사람들로 들이차 발 디딜 틈이 없다. 하지만 건장한 사내들이 다리 아래로 우르르 내려가자 다들 슬금슬금 시선을 피하는 눈치이다. 두어 해 전에도 다녀간 장소. 그때 족대질로 강을 훑으며 오르내렸던 기억들을 너도나도 이야기했다. 오진 햇살을 피해 고기를 굽고 술잔을 기울였다. 물가에 발을 담가 치기를 드러내 물장난을 하며 비로소 여름 무더위가 실감났다. 한쪽에서는 밥도 하고 라면도 끓여 끼니를 채워야 한다며 일행들을 쫓았다. 그렇게 화끈한 하루를 보내고 다시 차에 올랐을 때 N은 여지없이 볼륨을 빵빵하게 올렸다. 다시 트롯 가락이 사방에 요동친다.
"이건 뭐, 종일이네. 다른 노래 없어?"
이 노래가 저 노래 같고 저 노래가 이 노래 같은 레퍼토리를 줄기차게 듣다 보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하나같이 정제되지 않은 노랫말도 거슬린다. 허나 내 불만 따위는 묵살되었다. 트롯에 종일 묻혀 있다는 게 고역인데 다들 아무렇지 않다니, 내가 이상한 걸까.

사상 초유의 코로나 사태로 사방이 통제되고 갇힌 일상이 시작되었다. 여행이라든지 모임은 최소되고 아무것도 계획할 수 없게 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코로나 확산 뉴스로 눈살이 좁혀진다. 언택트가 마땅한 일상, 방 안에서 딩굴거리다가 우연히 티브이를 틀었다. 거기서 트롯 경연대회를 보게 되었다. 가끔 톡으로 오가는 화제는 대회에 등장한 가수와 그들이 부른 훌륭한 트롯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그래, 일상이 우울할 수만 없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더라도 차츰 빠져들어 탐닉하지 않을 수 없다. 틀지 않던 티브이에 빼앗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재방을 거듭하는 방송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내가 접했던 경연대회 앞뒤를 찾아내 이어가며 재차 접하는 동안 나만 이러는 게 아니라 전 국민이 트롯앓이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보기 드물게 한산한 한낮 거리 풍경이 아무렇지 않았다.
"어라, 이것도 하나의 세상이잖아!"
트롯 하나만으로 달려가는 눈물겨운 인생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노래에 공감하고 위로 받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꺾고 오르내리다가 간들어지며 넘어가는 가락에 괜히 빠져들어 눈가를 붉히기도 한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기억하는 노래 창고 안 뭔가 빠져 모자라는 듯한 기분이던 게 채워진다.













Stefano Maccarelli,
Happy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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