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많이 지체되었네. 약속 시각에 빠듯하게 닿겠어."
"그 근방에 주차할 곳이 있어야 할텐데."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뭉게구름이 선명한 서쪽 하늘이 볼 만해 시선을 두고 있다. 그 순간 옆에서 후욱 치고 들어온 오토바이. 전방을 주시하던 친구가 기함한다.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가 출렁거렸다. 마침 앞쪽 신호가 바뀌었다. 늘어선 차들 옆에 주춤거리고 선 오토바이 옆에 바짝 다가갔다.
"오냐, 너 잘 걸렸다. 이 시끼."
차창을 내린 친구가 소리친다.
"야 임마, 그딴 식으로 운행할래? 사고 나면 어떡할거냐."
괄괄한 성격을 숨기지 못하고 씩씩대는 친구 서슬에 횡단보도를 지나던 사람들까지 기웃거린다. 친구가 얼굴이 달아오르도록 마구 소리쳤다. 오토바이 핸들을 잡고 있던 젊은 친구가 고개를 꾸벅 조아렸다. 그 바람에 핏대를 올린 친구가 머쓱해졌다.
"얼마나 놀랐는지 알어?"
재차 소리치는 친구를 만류했다.
"됐어. 그래도 눈빛을 보니 선하구만. 사고 안났으면 괜찮아."
"저런 녀석은 따끔하게 꾸짖어야 하는데 말야."
투덜거리는 친구 시선을 가리며 차창을 올렸다. 못 이기는 체 감정을 추스르는 친구.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그 순간 '쿵!' 하는 굉음이 울렸다. 저만큼 달음박질하는 오토바이.
"방금 뭐야?"
"저 시끼, 차 옆에 발길질한 거잖아."
나중 얘기를 들은 선배가 어이없어 혀를 찬다.
"그래서 그 놈은 잡지도 못했겠네."
"한쪽 문짝이 발길질로 우그러져 있는데, 차암 짜증나네."
"난 말이야."
선배가 말문을 연다.
"예전 후배하고 차를 운행하여 지방엘 내려가는데, 옆 화물차에서 갑자기 크락션을 울리잖아. 그 소리가 얼마나 큰 지 놀라서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어. 화가 나 핸들을 틀어 화물차를 막았지. 문을 열고 내리자 마자 소리쳤어. '너 내려!' 하고. 화물차 운전자와 드잡이질하는 통에 후배가 반대편 문으로 올라가 차 키를 뽑아서는 멀리 던져 버렸지. 그 녀석 그날 식겁했을거야."
듣던 우리가 씁쓰레한 웃음을 지었다.
동해안쪽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오후에 약속이 있어 서둘렀더니 출출하다. 철정리에서 기와집으로 웅장하게 지은 막국수집에 들렀다. 점심때여서 그런지 사람이 북적댄다. 안내해 주는 대로 튀어나온 기둥 옆에 앉았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나온 막국수를 먹으려고 하는 중 거슬리는 일이 생겼다. 사람들이 깔고 앉는 방석을 기둥 옆에 쌓아 두었는데, 걷어 온 방석을 툭툭 던져 놓는다.
"어이, 학생. 음식을 먹고 있는데 옆에서 방석을 던지는 건 아니잖나."
점잖게 타일렀다. 그리고는 금새 눈쌀을 찌푸렸다. 홀을 오가는 아이는 방석을 던지지 말라고 타이르는 내 말을 들었을텐데, 짓이 났는지 아니면 습관인지 더 멀리서 방석을 던져 놓는다. 인상 쓰는 일행을 대표해 내가 일어섰다.
"어이, 방석 던지지 말라는 말이 안들리나?"
고개만 주억거리는 아이를 보다 말고 카운터쪽으로 갔다.
"여기 사장님이십니까?"
"네, 그런데 왜요?"
"바쁘신데 미안합니다만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저기 홀에서 서빙하는 친구 말입니다. 옆에 음식을 먹고 있는데 방석을 휙휙 던져서 쌓으니 먼지 때문이라도 불안하네요."
이쯤 설명했으면 '미안하다'는 사과라도 나올 줄 알았건만 의외의 대꾸가 쫓아나왔다.
"그래서요?"
"네? 여기 사장님 아닙니까?"
"네, 맞는데.... 그런 일로, 지금 바쁜 모습이 안보입니까?"
"바빠도 짚을 건 짚어야 하고 시정할 건 시정해야지요. 마땅히 지켜야 할 일이 지켜지지 않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방석을 모포 두드리듯 그렇게 던져 놓으면 옆에서 어떻게 음식을 먹으라는 겁니까?"
"아이구, 손님. 여기는 시골이라 저런 알바생 구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닙니다. 웬간하면 넘어가 주세요."
"네에? 지금 무슨 말을 하세요. 방석을 던지지 말라는데 알바생 타령이라니요."
언성을 높이자 사장이 눈을 질끈 감는다. 듣기 싫다는 제스추어이다. 이걸 어떻게 해. 망설이는 참에 저만큼 있던 사장 부인되는 이가 쫓아왔다.
"손님, 왜 그러세요?"
아무래도 사장과는 얘기가 안되겠지. 그래도 자태가 반듯하니 안주인에게 얘기를 하면 뭔가 통하지 않을까. 할 수 없이 똑같은 얘기를 녹음기를 틀듯 되풀이했다.
"....이러저러해서 그러는데, 우리야 가면 그만이지만 여기서야 계속 사람들을 맞을 게 아닙니까? 그래서 이런 일을 고쳐 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그런데 뭔가 틀어져 있어. 빠알갛게 칠한 그 입술에서 엉뚱한 얘기가 쫓아나왔다.
"잘 알겠습니다, 손님. 그런데 왜 계속 욕을 하세요?"
"웅, 내가 언제 욕을 했다고?"
지금까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의문스럽다. 이 사람들은 말을 잘하는 이들일까, 아니면 상황을 꿰뚫고서 뒤집기를 하는 걸까. 아닌 말로 엉뚱한 트집을 잡아 논점을 이상한 곳으로 바꾸는 여자를 보고는 아연할 수밖에. 얘기가 길어지자 일행이 합세하여 거들건만 당최 말이 통하지 않는다.
"여기 참 이상하네. 사람들이 왜 이래?"
더 이상 막국수를 먹을 수 없다. 벌컥하여 신발을 찾아 신고 나온 통에 그냥 갈 수 없다. 홍천군으로 전화를 했다. 휴일이라 연결이 되지 않아 몇번씩 건너 뛴 다음 통화가 된 당직이라는 사람이 사정을 듣더니 외려 언성을 높였다.
"아, 그렇찮아도 그집 사장 때문에 저희도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손님, 그러지 마시고 서울에서 오셨다고 하셨지요. 제발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좀 올려주세요. 손님들 불만이 자자한데도 도무지 고쳐지지 않네요."
The Cranberries, Dreams(중경삼림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