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일상으로

*garden 2022. 3. 11. 22:17







겨울 산. 호젓한 산길, 냉랭한 세상에서 이틀째이다. 오늘은 해지기 전에 내려가야지. 군데군데 쌓인 눈과 얼음으로 비명을 지르는 바닥. 땀과 습기로 만신창이인 겉옷이 딱딱하다. 아이젠에 달라붙은 얼음 조각을 떼냈다. 발가락 감촉이 살아나게끔 앞발을 거칠게 내딛었다. 아마도 부어 엉망일거야. 두꺼운 장갑에도 아랑곳없이 곧은 손가락. 얼얼한 뺨을 감싼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냉기에 통증이 일 정도이다. 파도소리 같은 바람길을 헤치며 굼뜬 동작으로 나아갔다. 죽으러 가는 길처럼 막막하기 만한 저 언덕만 넘어서자. 의미 없는 다짐이야. 생각이 봄날 이모가 갈던 밭두렁처럼 끝이 없다. 걷는 동안 지난 삶을 복귀하며 고비마다 후회해봐야 소용없었는데. 그래도 삶이 바뀌기라도 할 것처럼 꿋꿋하게 걸었다. 내려가면 무엇부터 할까. 우선 따뜻한 탕 속에 몸을 담그자. 맛있는 것도 찾아 먹자.
걷는다는 건 축복이다. 세상 어느 구석인들 못갈까. 이 몸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으로 쫓아갈 수 있다는 게 근사한 일이야. 겨울이 끝나기 전 백년 동안이라도 나아갈 것처럼 걷고 또 걸었다. 주름잡힌 산등성이 융기가 내린 곳은 비린내 어우러진 바닷가 마을이었다.

"개수대에 웬 그릇을 이렇게 쌓아 두었냐?"
사나흘 비운 집 안. 들어서는 순간 어리둥절하다. 여기가 내가 살던 곳인가. 자다 말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온 아이. 냉랭한 나를 보자 더듬거린다.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자 고단한 길은 잊혀진다.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넣었다. 펼쳐진 방석이나 이불을 한쪽에 밀쳐둔다. 그래, 겨울이 아직 끝나지 않았어. 우람한 산등성이를 또 하나 넘어야 할 것처럼 숨을 골랐다. 팔을 걷었다. 한발한발 떼듯 수돗물을 틀고 수세미를 들었다. 조리 찌꺼기로 범벅인 냄비 서너 개. 속 깊은 후라이팬 두엇. 심지어는 잘 쓰지 않는 코펠에 빈 그릇과 사발까지 뒤섞여 잔뜩 쌓여 있다. 삼사 일 내내 꺼내 놓기만해서이다. 수저 역시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범위를 넘어 저 안쪽에 넣어둔 것까지 나와 있다. 예전 부엌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하던 어머니는 빈 그릇 가득한 큰 대야를 들다 말고 한숨을 쉬곤 했다. 요즘은 부엌이라는 개념이 별도로 없다. 아파트 구조상 한 공간에 모여 있는 때문인지 남자도 예사로 설거지 등에 매달리더라만. 나야말로 생전 하지 않는 설거지에 봉사활동하듯 매달렸다.
떨거럭대며 일단 쌓인 그릇을 정리한다. 좁은 데서 이것저것 분류할 것도 없다.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큰 그릇이나 유리컵 등을 먼저 닦기 등은 속편한 얘기이다. 세제부터 듬뿍 풀어 윗단에 올라와 있는 그릇부터 속과 밖을 닦는다. 혹시나 쌓인 그릇이 어긋나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세제를 칠한 위쪽 그릇들을 헹궈 옆 공간에 쌓아둔다. 그렇게 아랫단 그릇까지 처리한 다음 후라이팬이라든지 손잡이가 있는 냄비 등도 재차 세제를 칠해 헹궜다. 감촉이 미끈거리는 그릇은 서너 번이라도 세제를 이용해 기름기를 제거한다. 그릇은 포개놓기 일쑤이므로 바닥과 바깥면도 말끔하게 닦아야 한다. 먹는 입은 몇되지 않아도 그릇마다 꺼낸 덕에 구석에 쳐박혀 있던 그릇까지 씻어낸 것도 다행이라 여겨야겠지. 손대지 않았으면 모르지. 음식물 찌꺼기 채인 그물망까지 손으로 일일이 처리하고나자 속이 후련하다. 어른이 예전 그러하듯 설거지 다음에는 커다란 접시에 과일을 담아 아이를 불렀다. 그래, 힘든 산행 다음 뭔가 이뤄진듯 어깨에 얹혀지던 우쭐함을 이렇게 지우라고 한 거잖아. 비로소 떠났다가 돌아온 일상이 소중해졌다. 입가에 띄운 미소를 영문 모르는 아이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From the Beatles 'Yesterday' by Mantovani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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