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함박꽃 그늘에서

*garden 2022. 7. 29. 19:38



















배낭을 챙긴다. 현관에 들어서던 아이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어디 가시려나 봐요."
"이번에 무주에 다녀오마."
"장마철이 시작되어 비가 온다는데 괜찮을까요?"
"글쎄, 와도 좋고, 오지 않아도 좋지."
일행과 함께하는 숲길을 떠올렸다. 서성이며 에둘러 돌아가는 건 어떨까. 가는 길에 누구라도 불러내 볼까. 두어 군데 연락했더니 반색하는 바람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헌데 시간을 조정하기가 여의치 않다. 얼결에 잡은 약속이 버겁다. 온전히 계획한 여행만 해야 하는 것을. 이도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던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보고픈 이들이 많아진 탓인지도 몰라.

결국 출발 전날 곁가지로 잡은 약속들을 취소했다. 일정을 말살시키자 뾰로통한 표정들이 보인다. 그 댓가를 어떻게 치뤄야 할까. 뾰족한 목소리들을 지우려고 했지만 내려가는 내내 귀가 가려울 지경이다. 경솔했던 나를 탓할 수밖에.

아침은 건너뛰어도 될 것 같은데, 일행인 장 소장은 어림없다. 새벽 두세 시까지 잠 못 들어 멀뚱거리던 나와 달리 초저녁에 떨어져 있더니 새벽 네 시가 채 지나자 깨서는 어질러진 식탁을 말끔히 정리해 두었다. 그것도 모자라는지 이른 시각 묵는 호텔 주변을 산책하다 말고 전화를 했다.
"아침 먹으러 갑시다."
"이 신새벽에 문 열어둔 식당이나 있을라구요?"
"어제 오후에 봐 둔 식당이 일곱 시에 문을 연다니 그리 갑시다."
헌데 일곱 시는 커녕 삼십 분이나 넘어도 나타나지 않는 주인 탓을 하며 차로 구천동 주변을 한바퀴나 돌았다.

짐은 간편해야지. 배낭 안 장비들을 꺼냈다. 차 뒤편에 챙기는데 산그늘이 점차 옅어진다. 계곡으로 들어서자 한쪽에 모여 있던 햇살이 구역을 넓힌다. 준비운동을 하듯 성큼성큼 걸었다. 이른 아침부터 텁텁하다. 삼복 더위가 어련할까. 금세 등판이 척척해졌다. 늘상 오르던 구천동 길이 아닌 숲 사이 새로 난 데크를 따라 백련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다행히 전날 내린 비가 계곡을 채웠다. 수량이 만만치 않아 물소리가 요란하다. 가뭄이 이어져서인지 물 내음과 자취도 생경하다.
"막걸리를 구천 동이나 마실 수야 없지만 이 청량한 공기야 막을 이 없으니 구만 동쯤 담아가야겠어."
올라갈수록 무성한 숲. 아울러 마중나오는 물이 많아졌다. 아우, 오늘 여기는 그야말로 신천지야. 오기를 잘 했지. 세상을 말끔히 씻어낼 것처럼 쫓아나오는 우람한 물줄기. 가슴을 펴고 걸었다. 포말로 흩어져 공기중에 섞인 물기가 뜨거워진 육신을 식혔다. 여름 벌레 소리가 겹겹으로 두른 숲을 헤치며 들어가자 펼쳐지는 초록. 하늘은 온데간데 없다. 나무와 풀이 자라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오늘 나는 다시 태어날거야. 나무처럼, 풀처럼. 비로소 순수해진 영혼을 꺼내 손을 맞잡고 걸었다.
말간 햇살이 숲을 감싸며 폴폴 떨어져 내린다. 어느 순간 꽃 향기에 걸음을 멈추었다. 넓직한 바위 한켠 수줍게 꽃을 감추고 있는 나무. 그늘 아래서 황홀한 표정을 감추지도 않은 채 주저앉았다.






















































David London, Memories of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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