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위 검은고양이 한 마리....
허리를 공처럼 궁글리더니
입 벌려 햇살 한줌 베어 먹었다
담장 위에 박힌 깨진 병이라든지 사금파리 등은 아랑곳 없이
도도하고 우아하게, 또 귀하게 걷는다!
바스락대는 마른 담쟁이
부서지는 청량한 바람
가을이 숨어든 담장 너머로
검은고양이가 훌쩍 사라졌다
"이거 와 이렁교?"
"뭔데 그러십니까?"
술손님 드문 주막집에서 뻗대기 두어 시간
그도 낯 익힌 세월이라고
꼬장꼬장 손때 묻은 휴대전화기를 갖고 와
알아 듣기 힘든 말을 줄줄 늘어놓는데
전화 앞자리가 018이다
"이걸 왜 아직 안바꾸시고?"
"떠난 그 냥반 돌아올 제 연락할 번호라도 있어야지예!"
강경상고 나왔다는 김 부장
돈 세고 마지막은 '따닥'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을 튕긴다
"햐, 딱 맞네, 맞어!"
만사 기분대로 살아 마지막 한 장을 갈무리하듯 그렇게 될 듯하지만
이맘때면 고민이다
신용카드를 쓰지 않아 연말정산에 챙길 서류가 한둘이 아니기에
와중에 맡은 모임도 한둘이 아니어서 그 회계자료도 챙겨야 한다
살면서 스스로 세운 담벼락이 한둘이랴
살이가 빡빡할수록 점점 높아지고 아슬해지지만
별 일 아니라고 혼잣말로 위로해도
만만치 않다는 것쯤 안다
핑게 삼은 장애물마저 치우면 내 살이야 말로 허무해지기에
우격다짐으로 목줄을 매고 산다
담장을 넘어간 검은고양이처럼 그렇게 사라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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