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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꽃 그리고 여름

고속도로로 접어드는 반포. 사람 사는 곳과 엄연히 구분한 방음벽을 차지한 무성한 담쟁이. 수많은 잎을 끌고 벽을 넘는다. 지금은 초록이 성한 계절. 그 사이마다 주황색 여름나팔이 삐죽삐죽하다. "보기 좋아요. 저게 무슨 꽃이에요?" "능소화네." 꽃 이름을 듣는 아이 눈이 반짝인다. 아무렇지 않은 듯해도 가끔 속이 화끈하다. 심심하면 이는 불길을 끄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뜻대로이지 않을 적마다 세상 구석구석을 날아다니고 싶을 게다. 줄줄이 내려온 꽃이 하늘거린다. 사연이 있음직한 이름이다. 아닌 게 아니라 어느 때 안동에서 '원이 엄마 편지'가 발굴되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남편 관에 아내가 써 넣은 것이다.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도 발견되었다. 이 애틋하고 절절한 양반가 부부 이야..

不平則鳴 2022.08.31

배롱나무 꽃 피우다

연지곤지로 단장한 이모, 눈자위가 발갛다 어젯밤 소쩍새 울음 잦아들 때까지 흐릿한 호롱불 너머 소곤거리더라니 괜히 밉기 만한 이모부 될 이가 사모관대를 만지며 불콰한 목소리를 낸다 지가 호강시킨다고는 몬하지만 걱정일랑 않게 하겠심더 조막 만한 당나귀 타고 우쭐대며 세상을 얻은 듯 신 난 신랑 늙으신 어미애비 두고 떠나며 노심초사하는 신부는 꽃가마 안에서 옷고름만 꼭 쥐었다 떠들썩한 사람들을 헤치고 이미 동구 밖까지 나간 행렬 미운 심보로 올라선 배롱나무 위에서 발을 구르는데 간지럽다며 숨 넘어가는 나무마다 뜨거워진 속내 감추듯 붉디붉은 꽃구름 내려 매미소리 여릿한 한여름 오후를 밝혔다 Sergey Grischuk, Rain...Rain(А дождь всё льёт)

햇빛마당 2022.08.04

함박꽃 그늘에서

배낭을 챙긴다. 현관에 들어서던 아이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어디 가시려나 봐요." "이번에 무주에 다녀오마." "장마철이 시작되어 비가 온다는데 괜찮을까요?" "글쎄, 와도 좋고, 오지 않아도 좋지." 일행과 함께하는 숲길을 떠올렸다. 서성이며 에둘러 돌아가는 건 어떨까. 가는 길에 누구라도 불러내 볼까. 두어 군데 연락했더니 반색하는 바람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헌데 시간을 조정하기가 여의치 않다. 얼결에 잡은 약속이 버겁다. 온전히 계획한 여행만 해야 하는 것을. 이도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던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보고픈 이들이 많아진 탓인지도 몰라. 결국 출발 전날 곁가지로 잡은 약속들을 취소했다. 일정을 말살시키자 뾰로통한 표정들이 보인다. 그 댓가를 어떻게 치뤄야 할까. 뾰족한 목소리들..

不平則鳴 2022.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