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061

거기서도 너는

"세 밤, 세 밤만 참으라카이." 단번에 이루어지는 세상 일은 없다. '세 밤'은 어느 때 '삼 주'가 넘기도 하고, '한달'이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잠들기 전이면 바깥 달을 확인한다. 얼른 세 밤이 지나 '내가 기다리는 그날'이 와야 할텐데. "세 밤이나예?" "사내가 진득하니 참아낼 줄도 알아야 한다카이." 달이 부풀어 밝음을 더해갈 때면 흡족함으로 내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열셋쨋날 상현달이다. 유례 없는 가뭄이랬지. 비가 오려는지 바람이 일고 있다. 달이 일렁여 마음까지 흔들리는 저녁. 날이 밝자 역시 덥다. 어젯밤 바람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범벅이다. 강렬한 볕에 저절로 얼굴을 찌푸리고 걸었다. '어라, 이것 봐라.' 자갈밭 사이에서 익숙한 자태를 찾아냈다. 십여 년 전..

不平則鳴 2022.06.16

이정표

티티새가 날아가 버린 하늘 울음 사그라진 자리 선연한 피 한 방울에서 꽃 핀다 떠난 존재에 대한 연민과 남겨진 무료한 시간에 대한 서술 뼛가루처럼 부유하는 미세 영혼들로 숲길이 혼곤하다 오늘은 남한산성이다 한나절을 헤매다 오솔길을 타고 내린 주막 거리 이방인처럼 떠돌았다 몸을 비틀어 고치 속처럼 얽힌 노랫소리를 더듬는다 오후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등꽃 꽃등 밝힌 저 곳에 가 에스프레소라도 한잔 청하면 괜찮아질까 '갈등(葛藤)'은 개인이나 집단 사이 처지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을 일으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한자를 살펴보면 '칡 葛'과 '등나무 藤'이다. 칡과 등나무 모두 대를 휘감고 올라가는 성질이 있는데, 여기서 칡은 오른쪽, 등나무는 왼쪽 방향으로 감아서 이 둘이 같은 나무를 타고..

不平則鳴 2022.06.03

향기나는 벚나무

- 바람이 부드러워졌어. 새 세상이 시작된 거야. 이제 우리가 나가야 할 때야. 자칫 늦으면 안돼. 저런, 넌 왜 얼굴이 그렇게 부었니? 쟤 좀 봐, 아직 잠이 덜깬듯 눈을 반쯤 감고 있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손 잡고 나가야 하는 것 알지? 다 함께 외쳐봐. 내일을 위해! 오늘 점심 메뉴는 새싹비빔밥이다. 아기 볼살을 스친 건가. 깨끔한 맛이 입 안에서 돌아다닌다. 혀를 굴리며 한입 씹었다. 머리 속을 울리는 풍미. 여린 맛을 음미하듯 눈이 게슴츠레하던 맞은편 동료가 입꼬리를 올렸다. "어머, 이 집에 테라스도 있었네. 바깥 탁자에서 먹을 걸 그랬나 봐요." "여기도 괜찮아요. 사람들 얘기와 바깥 세상이 한데 어울리니." "그나저나 어느새 봄이 사방에 내려앉았을까! 저기 벚..

自然索引 2022.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