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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꿈자리

무진장 가을 속 한량없다가도 친구들과 함께 왔다며 인사하는 아이 때문에 부산스러웠는데 깨어나서야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다 아아, 나비 떼에 둘러싸여 떠나는 뒷모습이 그대, 마지막이었구나! 앞뒤 절벽에 끼인 듯 숨조차 못 쉰, 짓이겨진 살에 박힌 강철 같은 뼈다귀여! 밤 새 울어댄 귀뚜라미 소리인들 애닯지 않았을까 소슬바람에 흩날린 낙엽보다 못한 존재 세상 모든 이를 사랑하겠다며 밝게 웃었어도 사랑 한줌 담을 수 없는 그대들 어둠 속에서 꿈을 꺾었으니 그 길 어이 밟을 수 있으랴 비탈져 흘러내린 이태원 길, 다부룩한 잔디로 덮어 두어라 다가올 새 봄, 짓밟힌 꿈 한조각이라도 싹틀 수 있게 - 이태원 참사를 애도합니다! Giovanni Marradi, Shadows

햇빛마당 2022.11.07

구월 편지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하고 싶은 얘기를 늘 떠올리다가도 막상 책상 앞에 앉으면 막막한 탓입니다. 세월이 흐르는 물 같아서 자칫 함께 흐를 뻔합니다. 구월이 막바지에 다달았습니다. 가을 시작이 가을 끝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만큼 짧게 여겨질 가을. 마음은 이미 겨울 속으로 들어가는지도. 어쩌면 편지도 더 이상 쓸 수 없을겁니다. 넋두리를 풀어놓을 공간을 'DAUM'에서 없애겠다네요. 오랜 시간 이어온 삶의 흔적을 깡그리 떨어버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쉬운 말로 '이번 생은 글렀어.' 하며 다음 생을 각오하지만 그 또한 내가 원하는 생으로 다가들까요. 글러버린 생이 다시 글러버려지고 그렇게 되풀이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공간 속에 흩어져버릴 삶의 기억처럼 아무것도 아닌 생에 어찌 그리 집착하고 있었을..

不平則鳴 2022.09.28

아직 길에서

아침 운동 중에 코 안이 맹맹하다. 묽은 이 기운이 뜻하는 게 뭘까. 금방 일어섰다. 고개를 쳐들었건만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 열이 터지다니. 응급조치를 해도 피는 멈추지 않았다. 한며칠 과로한 기억도 없는데. 내 몸은 가라앉아 침잠한 사이에도 이리 물길을 내고 저기로 흐르며 나름 생기를 지우지 않은 모양이다. 코 안쪽에 핏딱지가 엉킨 채 며칠을 지난다. 이게 지워질 만하면 다시 피가 터지기를 서너 번. 포기하고 놔둬 버렸다. 남쪽으로 여행을 갔더니 COVID-19로 연기했던 축제가 몇년 만에 열렸다고 했다. 일행과 밤 늦은 소읍을 뒤지기를 한 시간. 간신히 잡은 숙소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밤을 지난다. 진작 술을 한잔 들이켰건만 뒤척이다 새벽녘 일어났다. 의도적으로 한쪽으로 누워 있었더니 막힌 피딱지 때..

不平則鳴 2022.09.13